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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에서]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물찾기

권동석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문화예술 창고

유럽가는 관문에 위치...발전 가능성 커

시민들 韓 사랑 남다르고 한류바람 거세

시장 논리서 벗어나 우호관계 넓혀야





지난 1942년 4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봉쇄 전(1941년 9월8일~1944년 1월18일) 시기, ‘예르미타시’ 박물관에서 누군가가 그림 없는 액자를 가리키며 열심히 그림 설명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치 빈 액자에 그림이 있는 것처럼 집중하며 이야기를 듣는다.

‘예르미타시’의 유명한 일화다. 대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 기간 중 박물관 내 모든 전시품들을 대피시켜 박물관은 비어 있었지만 ‘예르미타시’ 직원이 시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박물관 견학을 진행했다고 한다. 900일 이상 도시가 폐쇄되고 100만명 이상의 시민이 굶어 죽어가던 힘든 전쟁 시기에도 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

제정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생긴 지 300년으로 여타 유럽 대도시에 비해 젊은 도시이다. 그럼에도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고 세계 3대 박물관 ‘예르미타시’를 비롯해 크고 작은 박물관이 300개가 넘는 러시아 문화예술의 보물창고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주춤하지만 러시아 문화예술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명성이 한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해 한국인 여행객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해 올해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에서는 러시아 회화 작품이 가장 많이 전시돼 있는 ‘러시아 박물관’ ‘도스토옙스키 기념관’과 유명 보석 세공품들이 전시된 ‘파베르제 박물관’ 등에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설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예술 및 관광의 도시에 한국의 대기업인 현대자동차가 성공적으로 생산 공장을 건립해 러시아 내 자동차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이곳에는 지난해부터 조선 해양 및 보건의료 분야 협력이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이렇듯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문화와 관광이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 봐야 할 때가 됐다.
이 도시의 인구는 600만명에 육박하는 유럽 내에서도 몇 안 되는 대도시이다. 그리고 러시아 북서관구의 수도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북구 및 동구 유럽으로 나가는 관문에 위치해 있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미 예전부터 시장과 발전 잠재력이 매우 큰 도시였다. 다만 우리가 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한국과 러시아는 비록 수교 기간이 30년에 불과하지만 과거 1900년 대한제국 시절 외교관이자 독립운동의 기반을 마련한 이범진 주 제정러시아 상주 공사의 부임을 기준으로 보면 양국 공식 관계의 시작은 120년을 훌쩍 넘는다. 그동안 양국은 단절 기간이 아쉬웠던 만큼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으로 급속히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의 관심이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저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러시아 전체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전 세계에서 부는 한류 바람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주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관이 지난해 개최한 ‘코리아 페스티벌’ 행사에 약 2만5,000명의 상트 시민들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게다가 올해에는 코로나19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현지 자동차 극장에서 개최한 한국 영화제에는 ‘기생충’을 보기 위해 자동차 물결이 일 정도였다. 이토록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한국 사랑은 남다르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의 관계는 이제 시작일 뿐이고 우리가 더 알아가야 할 도시이다. 단순히 우리의 시장 논리로만 바라봐서도 안 되는 곳이다. 한-러 양국이 진정한 우호협력 관계로 발전하고 유지하는 데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러시아와 유럽 내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계속해서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보물찾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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