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혈족이면 누구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 받아 개인정보를 볼 수 있게 한 법 조항을 가정폭력 가해자에게도 그대로 적용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가정폭력 피해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조치를 담아 개선된 입법을 권고했다.
헌법재판소는 28일 가정폭력 피해자 A씨가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14조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법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남을 인정하되 효력을 즉시 중지하면 혼란이 생길 수 있을 때 내리는 결정이 헌법불합치다. 헌재는 내년 12월 말까지 법률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한다고 덧붙였다.
A씨는 배우자의 가정폭력으로 이혼하고 아들을 홀로 키우며 생활하고 있었다. 배우자는 법원으로부터 A씨에 대한 접근금지 및 피해자 보호명령을 받았는데도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거나 협박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계속 괴롭히다 징역형을 선고 받은 상태다.
A씨는 배우자가 자신의 주소를 알 수 없도록 개명을 하려 했지만 전 배우자가 자녀 명의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 개인정보를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는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해 ‘아이를 기준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항을 만들지 않은 점’이 ‘입법부작위의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관들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로 판단했다. 헌재는 “가족관계증명서에 있는 민감한 정보가 유출되면 개인의 인격을 침해할 수 있다”며 “가족 사이에도 개인정보의 오남용, 유출 가능성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발급 받은 가족관계증명서로 인해 전 배우자가 입는 피해가 매우 중대하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자녀 명의로 가족관계증명서를 청구할 때는 추가가해 등 부당한 목적이 없음을 소명하고 피해자의 개인정보는 삭제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만 헌재는 내년 12월31일까지 법의 효력을 유지하고 대체 법률을 입법토록 권고했다. 위헌 결정으로 법의 효력을 없애버리면 가정폭력 가해자가 아닌 일반 직계혈족마저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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