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지난 26일 개봉한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난해했지만 몰입감은 최고였다. 2,400억 원에 달하는 제작비가 말해주듯 각 장면의 연출과 스케일은 압도적이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높은 평점과 호평 리뷰가 이어졌다.
하지만 코로나 19 위기 격상이 영화 흥행의 발목을 잡았다. 감염병 전국 확산 우려 속에 방역 당국이 ‘집에 머물기’를 강력 권고하면서 주말 극장 방문객은 급감했고, 테넷의 개봉 초반 관객 수 역시 앞서 개봉한 영화들에 비하면 상승세가 시원치 않았다. 흥행이 보장된 듯했던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마저 코로나 19에 힘 못 쓰는 모습을 보이자 9월 이후 개봉을 예고했던 작품들은 줄을 이어 개봉 연기를 발표했다. 영화계는 다시 들이닥친 한파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테넷은 개봉 이후 줄곧 일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개봉 4일 차인 29일까지 54만3,101명의 관객을 모았다. 매출 점유율은 70%를 넘었고, 예매율도 60%를 웃돌아 단연 1위다.
하지만 코로나 위기 격상 이전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흥행은 저조한 편이다. 이달 초 개봉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개봉 4일 차까지 152만명을 동원했다. 테넷의 3배 수준이다. 코로나 위기 격상의 충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치다.
테넷이 코로나 2차 유행의 직격탄을 맞는 모습에 다른 개봉 예정작들은 줄줄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또 다른 할리우드 대작 뮬란은 다음 달 10일 개봉을 예고했으나 국내 코로나 확산세가 예사롭지 않자 일단 다음 달 17일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연초 개봉 직전 코로나 타격을 받았던 데 이어 가을 코로나 확산과도 맞닥뜨린 것이다. 뮬란은 미국에서는 극장 상영을 포기하고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눈을 돌렸지만 한국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관객을 대면하겠다는 계획을 놓지 않고 있다.
국내 SF 영화의 지평을 넓히겠다고 선언했던 ‘승리호’도 개봉을 미뤘다. 승리호는 당초 추석 연휴를 노리고 다음 달 23일 개봉을 시도했으나 코로나 상황 악화에 기약 없는 연기에 다시 들어갔다. 승리호 역시 앞서 한 차례 개봉 일정을 미뤘던 바 있다. 배급사 측은 “추후 개봉 일정은 상황을 지켜보며 결정되는 대로 안내하겠다”며 “개봉을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에게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극장가는 연일 스케줄 조정에 정신이 없다. 8월 말 개봉을 준비했던 한국 영화 ‘국제수사’, 애니메이션 ‘마이 리틀 포니 : 레인보우 로드 트립’ 등은 개봉 준비를 잠정 중단했다. 9월 개봉 예정작 중에서는 ‘뉴 뮤턴트’ ‘기기괴괴 성형수’가 일정 변경을 밝혔고, ‘담보’ 역시 개봉 연기를 잠정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영화 흥행의 절반 정도는 개봉 날짜가 좌지우지한다는 말을 새삼 절감한다”며 “코로나 확산세가 멈추지 않을 경우 추석 대목은 물론 연휴까지 계속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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