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대회가 모두 끝나고 본격적인 2020년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먼저 시작된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 후보는 자신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결을 빛과 어둠, 자유와 억압의 대결 구도로 프레임하면서 단결을 호소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법과 질서, 그리고 미국식 삶의 수호자임을 자처하면서 바이든 후보가 당선될 경우 사회주의와 급진운동이 득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시기를 어둠·공포·증오가 점철된 기간으로 묘사한 후, 그로 인해 민주주의가 훼손돼 미국의 대외 리더십이 약화됐으므로 민주적 가치의 국내적 회복이 국제적 신뢰를 회복하는 지름길이라고 역설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엄격한 이민규제, 국경안전의 확보, 국방비 증액, 중국과의 관세전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폐기 등의 업적을 내세우며 자신만이 미국을 더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은 전당대회 기간 중 위스콘신에서 재발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확산 조짐과 무관하지 않았다. 공화당 전당대회 개최 직전인 지난 23일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 제이컵 블레이크라는 흑인이 경찰의 총에 중상을 입자 이에 항의하는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17세 백인 소년이 무장 자경단과 함께 시위에 참가한 두 명의 흑인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시위는 방화 등으로 더욱 격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고 법과 질서를 거듭 강조하면서 시위 자체를 미국문명에 대한 급진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의 도전으로 몰아붙였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강조한 것은 다분히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 여기에는 시위자들을 사회질서 위협 세력이나 체제 전복 세력으로 부각하고, 이를 통해 사회 전체에 위기감을 확산함으로써 선거국면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꿔 보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화와 약탈 등 시위의 폭력적 측면을 강조한 후 자신을 미국의 강력한 수호자로 부상시킴으로써, 보수 유권자 결집과 동원은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자신에게 멀어진 중도층 백인들도 되돌리려 한다.
대체로 사회의 다수세력이나 주류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는 근본가치에 도전하는 강력한 세력이 성장하거나 사회의 근본질서를 훼손할 정도의 심각한 위협이 발생하는 경우 자신의 원래 이념성향과는 상관없이 사회적 안녕과 질서를 유지해주는 스트롱맨을 지지하는 성향이 증가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저학력·저소득층에서 크다. 이때 이런 종류의 위기를 방조하는 기성 정치인은 민중의 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위기를 극복하는 인물은 민중과 한편이라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 지도자의 이분법적 갈라치기 논리가 호응을 얻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당대회에서 법과 질서를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이러한 갈라치기 전술을 다시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결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시위로 인한 혼돈을 방관하는 인상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를 미국적 가치와 문명에 대한 도전으로 싸잡아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또 주정부가 요구할 경우 연방차원에서 치안유지에 언제든지 협조할 준비가 돼 있음도 반복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그는 시위로 인한 무질서와 혼란을 미국문명의 수호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부각시키고 지지율을 올려줄 호재로 보고 있는 듯하다. 집권 공화당이 백악관 앞마당 사우스론에서 마스크마저 벗고 ‘위대한 미국’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민주당이 전국적인 지지율 우세에만 안주하고 있을 시기가 아닌 것 같다.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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