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수사해온 검찰이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고위관계자 1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승계과정에 직접 관여했다는 물증과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삼성 측은 “처음부터 삼성그룹과 이재용 부회장의 기소를 목표로 정한 수사였다”며 “무리한 기소”라고 강하게 맞섰다. 앞으로 최소 3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재판에서 양측의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1일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과 함께 옛 미래전략실의 최지성 전 실장, 장충기 전 차장, 김종중 전 전략팀장과 최치훈 삼성물산 대표, 이영호 삼성물산 최고재무책임자,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 등 11명도 함께 기소됐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과정을 당시 미래전략실과 함께 직접 추진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엘리엇이 삼성물산 합병을 반대하던 2015년 6월 미래전략실은 관련 대응을 정리한 문건들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최지성 전 실장과 공모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수사팀장인 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문건들을 확보하고 관련자 진술 등을 종합해 공모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검찰은 구체적으로 어떤 증거와 진술 내용이 있는지는 앞으로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밝혔다.
삼성 변호인단은 “검찰의 기소로 삼성그룹과 피고인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흔들리지 않고 현재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데 힘을 보태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경제 전반이 위축된 상황에서 검찰의 기소로 사법 리스크가 더욱 커지며 경영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검찰이 삼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고 기소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1년 10개월이다. 1년 8개월이 넘는 수사에다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결정 이후 전문가 의견 청취, 내부 검토 등을 거쳐 기소까지 걸린 시간이다. 하지만 결과는 자기 부정이었다. 검찰권 견제를 위해 스스로 만든 수사심의위 내용을 거부하면서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무리한 기업 흔들기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워졌다.
검찰은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물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유리하도록 한 행위로 그 중심에 이 부회장이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국민 여론은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도 무리한 기소였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3전 전패에도 마이웨이…검찰은 독불장군인가=검찰은 1일 수사 발표에서 “금융위원회 고발에서 시작해 수면 아래 감춰진 빙산의 실체를 밝혀냈다”고 자평했다. 불법합병의 실체와 이를 감추기 위한 조직적인 사법방해를 확인했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 부회장의 구속을 사이에 둔 법리대결은 물론 여론재판에서까지 전패를 면하지 못하고도 이 부회장을 재판에 넘기는 등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다.
검찰은 앞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게다가 수사심의위 개최 결정, 수사심의위 논의 결과까지 3전 3패 했다. 수사심의위 결정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라 검찰이 반드시 따를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앞서 열린 여덟 번의 수사심의위 결정을 수용한 검찰이 유독 ‘검언유착 의혹’ ‘삼성 불법합병·회계부정 의혹’ 사건에서는 반대되는 결과를 내놓은 만큼 ‘제 살 깎아먹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권 견제를 위해 스스로 만든 제도를 무력화시키면서 ‘독불장군이다’ ‘국민 판단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심의위 권고에 따라 △수사내용·법리 재검토 △전문가 의견 청취 △부장 검사단 논의 등을 했다’고 밝힌 점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검찰·변호인 주장을 들은 뒤 난상토론을 통해 낸 결론인 수사심의위 권고를 수용하지 않는 건 검찰이 국민 상식에 기초한 판단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겨울에 시작해 여름까지…오랜 수사에 흔들리는 삼성=검찰이 1년 8개월이라는 장기 수사에 매달린 점도 법조계 안팎에서 쓴소리가 쏟아지는 대목이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것은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을 압수수색한 지난 201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 외부 자문사 등 300명을 860여 차례나 조사했다. 겨울에 시작한 수사가 사계절이 지나고 다시 여름이 찾아올 시기에야 마무리된 셈이다. 수사가 마무리 시점에 돌입하고도 검찰은 수사심의위 권고에 또다시 두 달여 가까이 침묵했다. 산업계는 물론 법조계 안팎에서 검찰의 삼성그룹 불법합병·분식회계 의혹 수사를 두고 ‘무리한 수사’라거나 ‘기업 흔들기’라는 뒷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하나의 사건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수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당사자인 기업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는 처사”라며 “수사심의위 결과를 두고도 장고를 거듭한 점도 기업에 있어서는 하나의 희망고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 등의 기소를 두고 장고했다고 하지만 외부에서는 검찰 윗선 사이 책임 떠넘기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과거에 이같이 오랜 기간 수사하고도 핵심 피의자를 구속하지 못하면 수사를 지휘하는 수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없다”고 비꼬았다.
/안현덕·손구민·변수연·이희조기자 alwa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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