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으로 전공의가 13일째 집단행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중재자로 나선 여당이 해당 정책 원점 재검토를 시사한 데 이어 국회 내 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등 전향적인 입장 변화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보류’ ‘중단’ 방침을 마지노선으로 하고 있는 정부를 대신해 더불어민주당이 ‘원점 재검토’ ‘특위 구성 제안’으로 사실상 백기 투항을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주무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조율을 거치지 않은 여당의 제안에 야당은 당장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지만 특위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전공의의 집단행동이 멈출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2일 “김태년 원내대표가 특위 구성을 제안한 것은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충 등을 사실상 전면 보류하겠다는 것”이라며 “더욱이 특위가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것은 민주당으로서는 사실상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김 원내대표는 앞서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의대 정원 확대 정책 등에 반발해 의료계가 집단휴진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 “야당과 신속히 논의해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협의 기구, 국회 특위 구성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의사협회, 전공의 대표 등과 진정성 있게 논의하고 있다”며 “요구사항을 충분히 듣고 의료계와 협의해 의료 발전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들어가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래통합당의 즉각적인 반응은 냉랭하다. 복지위에서 다뤄야 할 사안을 왜 특위로 끌고 가느냐는 것이다. 통합당 소속 복지위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복지위가 있는데 별도의 특위까지 구성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그동안 복지위에서 의료계 파업에 관해 자세히 다룬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 “상임위가 먼저 논의를 한 후 별도의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전문가 집단, 이해당사자 등이 특위에 참여해 합의를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야당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특위 자체는 구성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이미 지난달 의료계·여야정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바 있는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위기상황에서 특위 참여를 거부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여당의 적극적인 중재에 의료계는 정부와의 대화에 앞서 협상안 마련에 착수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전공의·전임의·의대생이 연대한 단체인 ‘젊은의사비상대책위원회’와 만나 정부에 제시할 단일안을 논의한 뒤 3일 범의료계 4대 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 3차 회의를 열어 입장을 정리할 계획이다. 이후 곧바로 정부와 협상을 개시할 방침이다. 서연주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은 “젊은의사비대위와 의협 범투위가 오늘 만나 정부에 제시할 안을 조율할 것”이라며 “‘철회’라는 용어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원점 재검토’라는 단어가 협상안에 반드시 포함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정책위의장의 ‘원점 재검토’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우리 비대위원뿐 아니라 대부분의 전공의가 정부에 대한 믿음을 많이 잃었던 만큼 신뢰 회복이 먼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대하 의협 대변인 역시 “한 의장이 ‘제로 상태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한 것은 사실상 원점 재검토와 유사한 의미로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범투위 위원장은 최대집 의협 회장이 맡고 있고 젊은의사비대위도 정부와의 접촉 창구를 범투위로 단일화한 상태여서 범투위가 결론을 낼 경우 정부와의 협상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와 의료계가 합의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정부는 한 발 물러섰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국회가 대전협·의협과 함께 논의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원만한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며 합의되는 부분은 존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전날 의료계가 반대하는 공공의대 설립에 대해 국회 입법사항이라 권한 밖인데다 한방 첩약 급여화는 민·관·학이 함께 참여한 건강보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사항이라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의대 정원 확대의 경우 앞서 밝힌 대로 조건 없이 추진을 중단한다는 방침을 다시 확인했다. 정부로서는 사실상 백기 투항인 ‘정책 철회’ 외에 선택지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를 전면에 내세우며 부담을 덜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정세균 국무총리는 시·도 의사회 회장단과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의료계 집단휴진 해결책을 논의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전공의 집단행동이 지속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전공의는 정부와 국회, 의료계 선배의 약속을 믿고 환자 곁으로 가달라”고 말하며 현장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임지훈·우영탁·김혜린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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