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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소나무숲 둘러싼 왕릉엔 1,200년 된 茶 향기가…

■나무로 읽는 역사이야기- 신라 흥덕왕릉과 ‘안강형’ 소나무

강판권 계명대 사학과 교수

나무가 자라기 안좋은 환경때문에

뱀이 하늘로 오르듯 굽은 소나무들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명소로 꼽혀

흥덕왕때 唐에서 가져온 茶 종자

지리산에 심게해 茶문화 유행시켜

차인들 왕릉에 헌다하는 茶의 성지

경주 흥덕왕릉이 소나무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나라의 왕릉은 생태의 보고다. 신라왕릉 대부분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됐고 조선시대의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신라왕릉은 조선왕릉에 비해 보존상태가 좋지 않지만 자연생태 차원에서 아주 훌륭한 문화유산이다. 신라의 왕은 혁거세거서간에서 경순왕까지 56명이지만 현재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왕릉은 8기에 불과하고 주인을 추정한 왕릉까지 포함해도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에 위치한 신라 제42대 흥덕왕의 능은 신라왕릉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신라왕릉은 대부분 현재 경주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지만 흥덕왕릉은 경주 중심지에서 27㎞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흥덕왕릉 입구에 조성돼 있는 안강형 소나무숲


신라왕릉은 권력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문화재다. 그러나 현재 신라왕릉의 가치는 단순히 정치권력을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생태문화’ 대상이어야 한다. 생태문화는 문화를 생태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문화를 생태학적으로 이해하면 흥덕왕릉을 다양한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특히 흥덕왕릉은 신라왕릉 중에서 자연생태의 가치가 아주 높은 문화재다. 흥덕왕릉 입구의 소나무숲은 우리나라 의소나무 모델 중 하나인 ‘안강형(安康型)’의 현장이다. 안강형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동북형’ ‘중남부고지형’ ‘중남부평지형’ ‘위봉형(威鳳型)’ ‘금강형(金剛型)’ 등 6개로 나눈 사람은 일본 산림학자 우에키 호미키 교수였다. 흥덕왕릉 앞의 안강형 소나무는 줄기가 곧게 자란 ‘금강형’ 소나무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흥덕왕릉 앞의 소나무는 줄기가 굽어서 마치 뱀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하다. 이곳의 소나무가 이렇게 굽은 것은 나무가 자라는 데 아주 좋지 않은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나뭇과의 늘푸른큰키나무소나무는 모두 같은 종이다. 그런데도 모습이 다른 것은 토양과 기후의 차이 때문이다. 안강형은 여름철 강우량이 적을 뿐 아니라 온도 격차가 심해 소나무가 살기에 아주 좋지 않은 곳에서 발견된다. 아울러 안강형이 서식하는 지역은 신라 수도 경주 인근이라 소나무 수탈 때문에 산림생태계 파괴가 아주 심했다. 그러나 얄궂게도 흥덕왕릉 앞의 소나무숲은 경주 배리삼릉 주변의 소나무숲과 더불어 소나무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다. 안강형 소나무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흥덕왕릉을 종종 찾는 이유는 안강형 소나무를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차다. 흥덕왕은 우리나라 차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제10에 따르면 “흥덕왕 3년(828) 당나라 조공사신 중 대렴(大廉)이 돌아오는 길에 차 종자를 가져왔다. 이에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도록 했다. 차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에 이르러 유행했다.” ‘삼국사기’의 기록은 우리나라 차의 역사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지만 내용을 둘러싼 해석은 아직도 분분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도 중국에서 차씨를 가져오기 전부터 차나무가 존재했으며 흥덕왕 때부터 중국의 차씨 덕분에 차가 성행했다는 것이다.



흥덕왕릉 앞에 놓인 차(茶)


흥덕왕릉은 지금 우리나라 차인들이 헌다(獻茶)하는 차의 성지다. 흥덕왕릉은 입구에 소나무숲이 빽빽해 한참 숲을 걸어 들어가 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갈 때마다 가슴이 시리다. 재선충으로 죽은 소나무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선충 때문에 죽은 소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흥덕왕릉의 안강형 소나무도 자취를 감출지 모른다. 이곳 소나무 중 왕릉 옆에 있는 것일수록 나이가 많다. 왕릉 덕분에 보호를 잘 받았기 때문이다. 흥덕왕릉에는 그가 즉위할 때 죽은 장화부인도 함께 묻혀 있다. 흥덕왕은 자신과 함께 왕후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 부인을 잊지 못해 합장할 것을 유언했다. 12지신까지 갖춘 흥덕왕릉은 규모도 크지만 소나무 덕에 정말 아름답다.

나는 얼마 전 가장 존경하는 차인과 함께 흥덕왕릉 앞에 차 한 잔을 올린 후 능을 360도 돌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능을 감상하면 솔향기에 취해 선정(禪定)을 경험할 수 있다. 돌면서 가끔 하늘을 바라보면 무아지경에 든다. 헌다한 차를 능에 뿌리고 다시 근처 소나무 옆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 최고의 차연(茶宴)를 누릴 수 있다. 차는 전염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소나무도 우리나라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가 가장 많아 전염병 예방에 좋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차와 소나무숲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방역수단이다.

강판권 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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