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예비타당성조사 권한을 기획재정부에서 각 부처나 국가균형발전위원회로 넘기려고 하는 것은 지역균형개발 명목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는 사업들이 ‘비용 대비 편익’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기 대선을 1년 6개월 앞둔 시점에서 ‘곳간 지기’로 비유되는 기재부가 아닌 대통령 직속의 균발위가 예타 조사를 실시할 경우 지역 선심성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이 늘어나 국가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 각 부처가 예타 조사를 실시할 경우 부처 중심 사업을 키우기 위해 사실상 예타를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김두관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기재부 힘 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난 1999년 이래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예타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KDI는 ‘비용편익분석’을 통해 편익을 비용으로 나눈 값이 1보다 클 경우 경제적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정치 논리에 의해 사업이 무리하게 추진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다. 김 의원은 이 같은 예타 조사를 두고 “경제성이 평가의 중심이어서 지방은 사업이 좌절되는 실정”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예타조사 기준에는 경제성·정책성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이 포함돼 있다. KDI는 지역균형발전 분석을 통해 지역 낙후도 개선, 지역 경제 파급 효과, 고용유발 효과 등 지역 개발에 미치는 요인을 평가한다. 정부는 이미 지역 간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비수도권 예타 기준을 완화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기재부는 예타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해 수도권은 지역균형발전 평가를 없애고 경제성 평가를 기존 35~50%에서 60~70%로 높였지만 비수도권은 지역균형발전 평가 비중을 기존 25~35%에서 30~40%로 올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의원은 지역 예산 확보를 위해 기재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역구에 한 푼의 예산이라도 더 가져가야 하는 국회의원들이 기재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기에, 누구도 예타에 쉽게 손댈 수 없었다”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든 지역이 골고루 발전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이제는 결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예타 문턱이 낮아질 경우 국고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규모는 7월 88조원을 기록하며 이명박 정부(60조6,000억원), 박근혜 정부(23조9,000억원)를 더한 수치를 넘어섰다. 총선을 1년 앞둔 지난해에는 ‘국가균형발전’을 이유로 24조1,000억원 규모의 예타 면제를 실시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늘어난 나랏빚이 다음 정부의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9월에 (재정준칙) 검토를 마무리해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2021년도 예산이 이미 편성돼 있어 대통령이 바뀌는 2022년도 예산안부터 준칙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9월 정기국회를 통과할 경우 당장 2022년 예산안부터는 예타 무력화가 본격화돼 브레이크 없는 SOC 공사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예타조사 권한을 각 부처에 넘길 경우 사업을 ‘셀프 검증’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 등이 사업을 설계한 후 KDI가 아닌 별도의 연구기관에 예타 조사를 맡길 경우 조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들의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부처들은 필요한 예타 기준을 따로 만들 것이고, 그렇게 됐을 때는 제대로 된 타당성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인엽기자 insid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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