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다수가 수업을 듣지 않고 엎드려 자는 ‘잠자는 교실’은 노인부양 비율이 90%를 향해 치닫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미래 ‘생산성’을 담당할 청년 인재 양성에 실패해가고 있다는 신호일지 모릅니다.”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는 1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0’ 주제강연을 통해 “어제의 교육을 모두 버리는 수준으로 대대적 교육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같이 경고했다. 공교육 위기는 교육에 대한 투자가 더 이상 국가 성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존 ‘공장형 주입식 교육’을 한국 교육의 효율성을 바닥으로 끌어내린 원인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획일화한 교육 시스템 하에서 시험 점수 1~2점을 더 얻기 위해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수업에 매몰돼 있다”며 “이건 공부가 아니라 노동, 그중에서도 중노동”이라고 꼬집었다. 당연히 학습 효율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김 교수는 “일례로 한국 학생의 수학 점수는 세계 최상위지만 공부 시간당 점수로 따지면 최하위권”이라며 “비효율적 공부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1점 경쟁’은 탈락자를 속출시켰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제학업성취도평가(OECD PISA) 결과에 따르면 기초학력 수준에 미달한 한국 학생 비율은 지난 2000년 6%에서 2015년 14.5%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일본과 홍콩이 같은 기간 각각 3%, 1%씩 늘어나는 데 그친 것과 대조된다. 김 교수는 “기초학력 미달은 초중고등학교에서 고르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학습 부진 학생을 챙기지 못하고 마치 ‘조립이 덜 된 부품’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다음 단계로 밀어내는 셈이다. 교육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을 통과해 대학 입학에 성공한 학생이라고 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다. 김 교수는 “단계별 학생 공부 시간을 보면 초등학생이 일주일에 44시간, 중학생 52시간, 고등학생 64시간으로 순차적으로 늘다가 대학 합격 이후에는 26시간으로 뚝 떨어진다”며 “정작 한창 공부를 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탈진해버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획일화한 교육은 결국 통과자와 탈락자 모두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행복 만족도를 바닥으로 잡아끈 셈이다. 김 교수가 한국·미국·중국·일본 4개 나라 대학생을 상대로 ‘당신은 고등학교 시절을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나’를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 대학생 80.8%는 ‘높은 등수를 차지하기 위한 사활을 건 전장’이라고 답해 중국(41.8%), 미국(40.4%), 일본(13.8%) 등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비율이 높았다.
이처럼 교육 위기가 빚어낸 ‘우울한 자화상’은 특히 한국 사회에 치명적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한국은 전 인류가 직면한 불평등 심화, 기후변화, 인공지능(AI) 득세 3대 과제에 더해 인구의 급격한 감소, ‘인구 절벽’이라는 난제에 추가로 마주하고 있다”며 “‘인구 절벽’은 예고된 쓰나미 같은 재앙”이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은 오는 2050년 인구의 36%가 전체 인구를 위한 생산을 담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 노인부양 비율 역시 한국은 올해 21.7%에서 2060년 91.4%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 세계 평균 노인부양 비율이 같은 기간 14.4%에서 28.8%로, 선진국의 경우 30.2%에서 48.7%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견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김 교수는 “마치 ‘백약이 무효’한듯 했던 교육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며 싱가포르·홍콩의 혁신 사례를 소개했다. 싱가포르는 1997년 ‘학교에서 적게 가르치고, 더 많이 배우자’라는 교육 슬로건을 앞세워 ‘유연한 교육’을 추구해왔다. 한국의 획일화된 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김 교수는 “교사에게 교육과정 편성권을 부여하고 교육과정을 개발할 때 반드시 20%는 비워두도록 하는 등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도록 했다”며 “그 결과 싱가포르는 교육 혁신 성공 사례로 꼽힌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해 입시 개혁에 성공한 홍콩도 배워야 할 사례로 제시됐다. 김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 교육 역시 획일화한 수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전망했다. 그는 “국내에서 준비 안 된, 수준 낮은 온라인 강의가 학생과 학부모의 질타를 받는 것은 오프라인 학교 수업을 온라인으로 그대로 옮겨 왔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전 세계 7개 도시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이 온라인으로만 강의를 듣는 미국 ‘미네르바스쿨’에서는 교수가 5분 이상 말하면 시스템이 경고음을 울리고 10분 이상 발언이 계속되면 마이크를 아예 꺼버린다. 학생의 자율적인 사고력을 극대화하려는 실험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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