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기로 인공지능(AI)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인간은 새로운 길로 가야 하고 이런 상황에서 창의력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인간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창의력입니다.”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10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0’에서 주제강연을 맡아 창의적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술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처럼 생각하는 AI 개발은 어려울 것”이라며 창의력이 AI 시대 인간의 최후의 보루라고 강조한 뒤 “미래사회에는 지식과 창의력은 물론 인간과 기계,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는 협동도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누구나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창의력 교육에 소홀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우리 자신 또는 자녀들이 단 한 시간이라도 창의력 계발에 투자한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하면서 “학교에서도 창의력 계발 수업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창의력이 노력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 능력이라고 보고 포기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며 창의력은 교육을 통해 충분히 기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간단한 원리만 알면 창의력을 노력만으로 기를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정치·사회·시장을 주름잡는 유대인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세운 빌 게이츠 등 유대인들을 소개하면서 “유대인이 2,000년 전부터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혈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질문과 토론을 잘하는 학생을 최고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획일적 교육 제도를 뜯어고치지 않는다면 창의적 인재를 기르기 어렵다고 이 교수는 충고했다.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며 학생들을 현실에 구속하는 시스템에서는 학생들의 기발한 질문이 나오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외부 강연을 나갔더니 학생 3분의2가 엎드려 자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며 “오죽하면 자겠는가. 구속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자신의 애제자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사) 대표이사를 떠올렸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KAIST 대학원에서 전산학과 석사를 취득한 뒤 박사과정을 6개월 만에 그만두고 지난 1994년 게임사 넥슨을 세웠다.
“제 연구실에서 대학원생으로 있었던 김정주 학생은 부적응자였습니다. 수업에 늦거나 결석하기도 했고 슬리퍼 차림으로 학교를 나왔어요. 그래도 저는 야단을 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놔뒀습니다. 어느 날은 저에게 게임을 개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네트워크게임을 개발하겠다고 하길래 제가 아직 인터넷도 잘 안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곧 인터넷 세상이 될 테니 준비하겠다고 하길래 ‘한 번 해봐라’ 얘기해줬습니다. 그렇게 세운 게 세계적인 회사 넥슨입니다. 구속력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대면교육은 학생들에게 AI·빅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이 교수는 평가했다. 그는 “비대면수업은 평소 질문을 하지 않던 학생들도 실시간 채팅으로 질문을 하는 등 장점이 많다”면서 “집중이 어렵고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기술을 활용하면 보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온라인교육이 활성화됐지만 내용과 평가 방식은 그대로여서 구속은 여전하다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교실에서 엎드려 자던 학생이 컴퓨터 앞에서 집중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에 이 교수는 교수자들의 인식과 수업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실에서 TV를 거꾸로 설치해서 보기 시작한 게 10년 됐다”며 “왜 사람의 머리는 위, 다리는 아래에 있다고 인식해야 하는지, 왜 누구나 똑같이 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 거꾸로 본다. 그러면 새로운 생각이 나올 수 있다”고 소개했다.
미존(未存) 수업 역시 이 교수가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기 위해 시도하는 교수법이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학생들에게 생각해보도록 과제를 주고 학생들의 기발한 생각에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그는 “학생들이 드라마를 봐도 다음 전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책을 읽다가도 어떻게 새로운 것을 만들지 생각한다며 놀라워한다”면서 “이 수업을 하면 학생도, 나 자신도 바뀌는 것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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