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한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사고 당시 주의를 끌어 주변 간호사 등을 보호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이상훈 부장판사)는 전날 임 교수의 유족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의사자 인정 거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면서 이같이 판단했다.
재판 과정에서 알려진 당시 상황에 따르면 임 교수는 지난 2018년 12월31일 찾아온 환자 박모씨가 이상한 행동을 하자 간호사를 호출해 비상벨을 눌러 달라고 손짓했다. 이 간호사가 나가자 박씨는 진료실 문을 안에서 잠그고 흉기를 꺼내 들었다. 이에 임 교수는 연결 통로를 이용해 옆 진료실로 이동한 뒤 복도로 빠져나왔다.
임 교수를 따라 나온 박씨는 옆 진료실 문을 열어 준 간호사에게 달려들다가 의자에 부딪혀 멈칫했다. 간호사는 그사이 임 교수가 이동하던 복도의 반대편 비상구로 달아났다.
반대쪽으로 움직이던 임 교수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그는 간호사가 박씨로부터 달아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옆의 접수처에 있던 다른 간호사에게 “신고해! 도망가”라고 말했다.
임 교수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본 박씨는 다시 임 교수를 향해 달려갔고, 반대편 복도 끝으로 달아나던 임 교수는 미끄러져 넘어져 범행을 당했다. 재판부는 이를 두고 “임 교수는 박씨의 범죄를 제지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이 가중되는 것을 무릅쓰고 직접적·적극적 구조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구조행위라고 보기 어렵다며 의사자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복지부 의사상자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우선 당시 박씨의 상태로 미뤄 병원에 있던 사람은 누구든지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고 봤다. 이어 임 교수가 복도로 나온 뒤 멈춰 돌아서서 간호사가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다른 간호사에게 도망치라 말한 것이 피해를 막기 위한 구조행위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는(간호사에게 도망가라고 말한 것은) 임 교수가 박씨의 주의를 끌어 계속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한 행위이자, 다른 간호사들에게 위급한 상황임을 알려 박씨의 공격에 대비하고 경찰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해 피해를 방지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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