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와 배임죄로 수 차례 실형을 선고 받은 부장판사 출신 법조인이 의뢰인을 속인 혐의로 실형을 또 다시 선고 받았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양철한 부장판사)는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모(62) 변호사에게 징역 1년6개월과 추징금 8,000만원을 선고했다. 한씨는 지난 2008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변호사로 전업한 인물로, 구치소 수감 시절에 알게 된 A씨가 구속집행정지로 병원에 입원해있다는 소식을 듣고 해당 병원을 찾아가 A씨의 아내 B씨를 만났다.
한씨는 B씨에게 “남편의 항소심 담당 부장판사의 고등학교 동창을 변호사로 선임하면 남편이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고 벌금형도 선고받을 수 있다”며 경비 명목으로 1억5,000만원을 받아내 재판에 넘겨졌다. 한씨는 법정에서 이 돈에 대해 “사건 처리를 위한 경비 명목으로 금액을 받았을 뿐 청탁 또는 알선을 위한 명목이 아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법률전문가인 한씨가 B씨로부터 1억5,000만원을 받더라도 A씨의 구속집행정지를 연장하거나 감형시킬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 사기의 고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한씨는 같은 해 12월 다른 피해자 C씨에게 “나는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로 사업자금 조달과 대출 주선 등에 익숙하다. 당신이 추진하고 있는 개발사업에 사업자금 50억을 전달해주겠다”며 소개자금으로 3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도 있다. 한씨는 이에 대해 “사업자금을 조성해 C씨에게 주려 했으나 실패해 일이 잘 추진되지 않은 것뿐”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유죄로 판단했다.
이 사건과 별개로 한씨는 지난 3월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4월에는 배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또한 지난 달 중순에는 또 다른 배임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지난 달 중순에 언론에 공개된 또 다른 사건에서도 한 씨는 법률 전문가임에도 업무상 임무를 지키지 않아 재판에 넘겨졌다.
한 씨는 의뢰인 양 측으로부터 각 5억원씩, 약정금 10억원을 보관해주기로 한 뒤 한 쪽 당사자에 돈을 모두 넘겨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한씨는 2018년 6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의뢰인 A씨와 B씨로부터 각각 5억원씩을 받아 보관해주기로 하는 에스크로 약정을 맺은 뒤 10억원을 모두 A씨에게 넘긴 혐의를 받는다. 에스크로(Escrow)는 보통 계약 당사자 간 신용관계가 불확실할 때 제3자가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개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를 말한다.
한씨는 법정에서 “당시 본인의 경제적 상황이 에스크로 자금 행방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A씨에게 교부한 것뿐”이라며 배임의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한씨의 혐의를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판사 및 변호인으로서 오랜 법조경력을 가진 사람으로 약정서를 근거로 약정금액을 보관할 임무가 있음을 명백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위배해 약정의 일방 당사자 A에게 금액을 교부했다”고 판시했다.
양형 배경에 대해서도 “피고인은 피해자를 위해 약정금을 보관해야 할 업무상 임무를 위배해 피해자에게 재산상 손해를 가해 그 죄질이 좋지 않다”며 “법률전문가인 변호사임에도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보관 임무를 위배했다”고 밝혔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