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일본의 새 총리가 됐다. 지금까지 파벌의 합종연횡으로 총재가 정해졌던 자민당의 역사에서 파벌에 소속되지 않는 총리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지난 1996년 중의원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총재의 권한이 강화되고 파벌의 영향력이 줄어들었던 것을 상징하고 있다. 스가 총리가 1996년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더욱더 돋보인다. 일본 정치에서 자민당의 파벌은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그 기득권 유지에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무파벌인 스가 총리의 탄생은 파벌의 역학이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일본 정치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의 감동은 적었다. 자민당 총재선거 초기부터 스가 총리의 탄생은 예견됐기 때문에 일본 국민의 열기는 식을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승리한 스가 총리가 ‘아베 정권의 계속’을 주창했기 때문에 변화의 여지는 적을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다른 이념과 정책을 담은 ‘포괄정당(catch all party)’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총재선거는 ‘유사정권교체’라는 흥행카드로 국민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그러한 열기는 느낄 수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 계승에 방점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일본 정치권은 총재선거 시작부터 ‘승리자에 편승’함으로써 포스트 획득 경쟁에 들어갔다. 양극화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에서조차 스가 총리의 리더십에 기대를 걸면서 아베 신조 정책의 계승에 표를 줬다.
스가 총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안정적 정권을 창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현재 자민당의 역학구도를 보면 스가 정권은 3년 이상 안정적 정권이 될 가능성은 있다. 스가 총리의 고민은 안정정권을 만들기 위한 시기(총선)와 방법(정책의 성과) 중 어느 것을 우선 선택할 것인지에 있다. 자민당 내에서는 새 총리 탄생에 따른 지지율 상승을 기반으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에 돌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조기 총선에는 적극적이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로서는 스가 총리가 조기 총선보다 정책 성과를 바탕으로 해 선거를 하는 편에 무게를 둔 것처럼 보인다. 우선 코로나19 대책에 집중하고 방역에서 성과를 내면서 올림픽 개최에 주력한다. 그리고 아베 전 총리의 ‘세 가지 화살’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성장전략(규제완화)을 추진하면서 지방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한다. 즉 스가 총리로서는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해 지방의 어려움 해소와 함께 경제회복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안정적 정권을 만드는 수순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경우를 선택하더라도 스가 총리의 우선순위는 국내정책에 있다. 실제로 스가 총리는 경제에서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주장하는 데 비해 외교에서는 그 구체성이 떨어지고 있다. 스가 총리는 “일본 외교의 기축은 뭐라 해도 미일 동맹이다.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아시아 각국과 제대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베 전 총리와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외교에서는 스가 총리가 별다른 경험도 없기 때문에 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외교에서 자신의 색깔을 내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스가 총리가 한일관계의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외교정책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스가 총리로서는 한일관계 개선이 정치적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한국에 볼이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한국과 타협을 하면 ‘더욱더 많은 요구를 한다’는 불신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보다 이념적 색깔이 약하면서 전략적인 사고에 충실한 측면이 있다. 이 점에서 스가 총리의 탄생은 한일 정상 간에 대화를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한일 정상 간 허심탄회한 대화의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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