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으로 사용된, 대표이사의 '수천만원 출장비'
지난 2012년 초, 한 출판업체 대표이사인 60대 A씨는 일본 출장을 앞두고 있었다. 출장을 가기 전인 1월 하순께 그는 회사에서 일본 화폐 25만엔을 출장비로 선지급받았다. 당시 환율 기준으로 약 37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회사 규정상 출장이 끝나면 출장비를 업무와 관련해 사용했다는 증거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증빙영수증이 지급받은 금액에 미달될 경우 그 차액을 회사 재경부에 반납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본으로 떠난 A씨는 현지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식사를 하고 술을 먹는 등의 상황에서 출장비를 사용했다. 이후 그는 4박 5일의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귀국 3일 후 A씨는 회사에 일본 출장비 정산을 신청했다. 그는 귀국 항공편 기내면세점에서 산 약 31만원어치 가방 영수증을 증빙서류 중 하나로 제출했다. 이 가방은 출장 업무와는 무관하게 A씨가 개인적 목적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6년이 흐른 시점인 2018년 4월까지도 A씨는 일본 출장에 대한 영수증을 재경부에 냈다. 여기에는 면세점 가방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목적으로 산 옷, 화장품, 염색약 등의 영수증도 포함돼 있었다.
출장비와 관련해 A씨는 재경부 직원 B씨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B씨에게 금액란이 비어 있는 일본 상점 영수증 수십장을 건네면서 “출장비 차액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 영수증을 활용해서 처리하라”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A씨가 사적으로 쓴 것으로 확인된 해외출장비는 약 6,570만원에 달했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
이후 A씨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A씨 측은 마사지샵 방문은 업무상 횡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단독으로 또는 직원들과 함께 출장 피로를 풀기 위해 발마사지를 받은 것”이라며 “출장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은 “개인적인 용도로 출장비를 사용한 것이 명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측은 B씨에게 빈 영수증을 준 것에 대해서도 횡령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A씨 측은 “영수증 없이 사용한 교통비, 접대비, 팁 등에 관해 증거자료를 남기기 위해 백지로 된 영수증을 회사에 제출하고 B씨가 금액, 일자 등을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사용처에 관한 증빙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장영채 판사는 지난 10일 A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장 판사는 “A씨는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누구보다 회사 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며 “그럼에도 출장비 명목으로 지급된 돈을 횡령해 그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이희조기자 love@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