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을 주는 법안이어서 과거부터 반대해온 내용이다. 물론 개정안 중 집중투표제 의무화 삭제, 감사선임 결의요건 완화 등 일부 기업 의견을 반영해 개선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난 20대 국회 때 폐기된 규제가 그대로 재추진되는 셈이다. 업계의 의견을 받아 이미 대한상공회의소와 경제단체들은 정부에 반대 입장의 의견서를 제출한 바 있다.
먼저 이번 개정안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멀다. 상법 개정안 중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이 될 이사에 대해 3%룰(의결권 3% 제한)을 적용해 독립적 감사위원을 뽑겠다는 것인데 분리선출은 물론 3%룰이라는 의결권 제한도 해외에는 입법례가 없다. 미국과 일본은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감사위원을 뽑는다. 정부가 이를 고집하는 것은 건전한 감시 세력을 통해 대주주의 독단경영을 견제하자는 취지이지만 실제로는 해외 투기펀드에 악용될 소지만 커진다. 소액주주나 시민단체가 대기업 지분 3% 이상을 갖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 내부거래 규제확대와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도 외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제도다.
정책 기조를 거슬러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정부가 그동안 장려해온 지주회사가 대표적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총수 일가가 지분 20% 이상을 가진 회사가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내부거래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키고 신규 지주회사의 자회사 의무지분율(상장 20→30%, 비상장 40→50% 이상)도 높이고 있다. 지분율이 높은 지주회사는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특히 신규 지주회사의 비상장 자회사는 자동으로 규제 대상이 된다. 지주회사가 되면 규제를 더 받게 되고 전환 비용도 오히려 증가하게 될 것이다.
또 실효성 없이 부작용만 양산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50%만 갖고 있으면 이 회사 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익법인 의결권을 제한하고 기업 간 정보교환을 담합으로 처벌하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의도했던 효과보다 오히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 및 정상적 기업활동까지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다.
‘역경(易經)’에 “凡益之道 與時偕行(범익지도 여시해행: 아무리 이로운 일도 적당한 때가 있다)”이라는 구절이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즐겨 인용하듯이 세상사에는 다 때가 있기 마련이다. 국가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왜 하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경제가 어렵고 위기감이 최고조인 지금 기업을 옥죄려고 하는지 의문이다.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면 유보하는 것도 방법이다.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합리적 대안이 마련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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