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감사원이 내놓은 대통령비서실 등에 대한 정기감사 결과는 최재형 감사원장이 최근 월성원전 1호기 감사를 두고 청와대·여당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자칫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은 감사임에도 최 원장과 감사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한민국 최고 권력기관에 각종 위법 사실을 알렸다.
무엇보다 이번 감사에서는 그간 사각지대에 있었던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들이 새로 추가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 원장은 ‘권력기관에 대한 감사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 지난 2003년 이후 줄곧 감사원 기관운영감사 대상에서 빠졌던 대통령 비서실·경호처·국가안보실을 2018년부터 감사 대상으로 부활시킨 데 이어 올해부터는 정책기획위원회·경제사회노동위원회·국가균형발전위원회·일자리위원회 등 4개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까지 감사 대상 리스트에 올렸다.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 자문위원회에 대해 그간 종합적인 점검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해 함께 점검했다”고 밝혔다.
감사원 결과로 드러난 자문위원회들의 운영 실태는 일반 국민 상식과는 상당히 멀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국가균형발전위는 2018년 7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스물일곱 차례 전문위원회 회의를 열면서 열다섯 차례 회의에 대해서는 관련 부처 국장급 이상 당연직 위원들에게 회의 개최 사실도 통보하지 않거나 일부에게만 통보했다. 민간전문가인 위촉직 위원들을 중심으로만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지역혁신·마을공동체, 교육·복지, 문화·관광 전문위원회의 경우 아예 부처 공무원들이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었다.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채 안건을 의결한 회의만 열한 차례에 달했다.
지난해 10월 347명의 위원을 위촉해 출범한 국민소통특별위원회는 지금까지 분과위원회도 구성하지 못한 채 한 번도 회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에 “지역 현안 수렴이라는 국민소통특별위원회의 활동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위원 위촉 등 위원회 구성 및 관리를 위한 행정력만 소모했다”고 지적하며 “국민소통특별위원회를 폐지하거나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등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일자리위원회는 ‘연령 기준’을 앞세워 무기계약직 25명의 면접 기회를 부당하게 박탈했다. 구체적으로는 2017~2018년 네 차례 무기계약직을 채용하면서 서류전형 과정에 채용공고에는 없던 연령 기준(35~50세)을 추가했다. 이로 인해 4명이 위법한 연령차별로 면접 기회를 빼앗겼다. 2018년 4월에는 비서직을 채용하면서 ‘청년 우대’를 이유로 응시 자격을 갖췄으나 35세가 넘은 3명을 서류전형에서 탈락시켰다.
법령에 비상근으로 명시된 위원장·부위원장들에게는 기준도 없이 수천만~수억원을 지급했다. 경사노위와 일자리위는 문성현 위원장과 이용섭·이목희 전 위원장에게 사례금이라며 각각 2억1,000만원, 5,500만원, 1억4,000만원씩 줬고 균형발전위는 송재호 전 위원장에게 매달 400만원씩 총 5,200만원을 자문료 명목으로 지급했다.
기존 감사 대상이었던 대통령 비서실·경호처에도 각종 비위가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이 올해 어린이날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 제작 용역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특정 업체의 영상을 먼저 납품받고 나중에 계약을 체결하는 법령 위반행위를 저지른 것을 비롯해 대통령경호처 직원 4명은 소속 부서장의 결재나 별도 근무상황 기록 없이 외부 강의에 나가기도 했다.
이 밖에 대통령경호처는 2007년 총액인건비제를 도입하면서 하위직급 15명을 상위직급 정원으로 조정한 가운데 이에 대해 구체적인 직급조정 정비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대통령비서실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 이력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관리하지 않는 점도 시정 조치해야 할 사안으로 꼽혔다. 다만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측근이 설립한 신생 공연기획사가 청와대 관련 용역을 수주한 건은 이번 감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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