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대장항문학회가 지난 4~6월 항문출혈로 전국 24개 병원을 방문한 10~89세 467명(평균 49세)을 조사했더니 항문출혈의 원인 질환(복수응답)은 치핵 67%, 치열 27%, 양성 항문·대장질환(염증성 장질환 포함) 6%, 대장암 또는 진행성 선종 5%, 치루 또는 항문 주위 농양 2% 순이었다. 크게 보면 항문출혈의 90% 이상이 치질인 셈이다.
부풀고 늘어진 치핵, 수술이 유일한 완치법
치질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치핵은 반복되는 배변, 힘줘 변을 보거나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 습관 등으로 인해 항문 주변의 혈관·점막, 점막 아래 조직이 부풀어 오르거나 덩어리를 이루며 늘어져 출혈이 일어난다. 복압이 올라가는 과격한 운동과 출산·음주 등도 위험요인이다. 음주는 혈관을 확장시켜 항문 출혈을 일으키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수술(근치적 절제술)이 유일한 완치 방법이다.
치루는 항문 안쪽에서 바깥쪽 피부 사이에 샛길(치루관)이 생겨 진물·고름·가스·변이 새어 나온다. 항문 주변의 만성적인 염증·고름이 출발점이다. 원인균이 일반 세균이나 결핵균 때문인지,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 때문인지에 따라 치료에 쓰는 약과 치료기간 등이 달라진다. 치루관 전부와 항문 조임근(괄약근) 일부를 잘라내 새 살이 밑에서부터 차올라야 근본적으로 치유된다.
변을 볼 때 피가 나고 아프다면 항문이 찢어진 치열을 의심해볼 수 있다. 이런 증상이 있는 5명 중 1명가량이 치열인데 심한 경우 변을 본 뒤에도 몇 시간씩 통증이 이어진다. 변비가 심하거나 항문이 좁아져서 생기는데 여성에게 많다. 1~2개월 미만의 급성 치열은 충분한 식이섬유소 섭취와 지속적인 좌욕을 통해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오래된 만성 치열은 내괄약근을 부분적으로 절개해 항문을 넓히는 간단한 수술로 치료된다.
대장암, 혈변 색깔로 구분 어려워
대장암 가운데 항문과 연결된 부위에 생기는 직장암도 혈변·점액변이 주요 증상이다. 대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결장의 왼쪽에 암이 생기면 변비·점액변·장 폐색 등이, 오른쪽에 생기면 증상이 거의 없거나 설사·변비·체중감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대장항문학회가 대장암으로 진단된 36~89세 65명(평균 67세)의 항문출혈 색깔은 선홍색 71%, 검붉은색·갈색·흑색 29%였다. 출혈양은 대변 겉 또는 휴지에 묻는 정도 66%, 변과 섞여 나옴 14%, 변기에 떨어질 정도 12%, 물총처럼 뿜어질 정도 5%, 핏덩어리로 나옴 3% 순이었다. 이와 관련, 오소향 학회 섭외홍보위원장(은평연세병원)은 “대장의 앞쪽에서 출혈이 있더라도 출혈양이 많으면 검붉은색보다 선홍색에 가까울 수 있는데 치질로 오인할 수 있으므로 대장항문 전문의 진료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항문출혈 1개월 이상 지속되면 검사를
항문출혈이 시작된 시기는 1개월~1년 미만 61%, 1년 이상 23%, 1개월 이내 16%였다. 출혈 외 증상은 61.5%에서 나타났다. 세부 증상(중복응답)은 잔변감(29%), 변비·설사 등 배변습관의 변화(25%), 체중감소(23%), 항문통증(17%), 점액변(6%), 항문 가려움증(5%), 항문덩이(3%), 복통(3%) 등이었다. 암 덩어리 때문에 대장이 좁아져 변이 가늘게 나오기도 한다. 이석환 대한대장항문학회 이사장(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외과 교수)은 “항문 출혈이 1개월 이상 이어지거나 용변 색깔이 검붉거나 흑색이면 대장암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대장암은 30대 이후 전 연령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장암의 원인은 크게 식습관과 같은 환경적 요인과 가족력(유전)으로 구분한다. 대장암의 약 80%는 동물성 지방 등 포화지방이 많은 음식을 자주 먹거나 비만·흡연·음주 등 나쁜 생활습관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지훈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돼지·소고기 같은 붉은 고기, 소시지·햄·베이컨 같은 육가공품을 즐겨 먹으면 대장암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며 “대장암의 80~90%는 작은 혹인 용종(폴립)에서 시작되므로 대장내시경 검사 때 제거하면 예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젊다고 안심 금물…대장암 9%가 40대 이하
일반인은 50대(미국에선 45세)부터 3~5년 주기로 대장내시경을 받는 게 좋다. 다만 최근 젊은층 대장암 환자 증가로 미국에선 45세에 첫 검사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대장암 환자의 9%가 40대 이하 연령층인 만큼 가족력이 있거나 흡연자 등 고위험군이 아니더라도 40세·45세 무렵에 대장내시경을 받는 게 안전하다.
염증성 장질환은 아베 신조를 일본 총리에서 물러나게 한 궤양성 대장염 등을 말한다. 궤양성 대장염은 유전적 요인과 잦은 고당질·고지방 식품 등 섭취로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나빠지고 과도한 면역반응으로 대장 점막 또는 점막하층의 염증이 호전·악화를 반복한다. 점액이 섞인 혈변, 변을 참지 못하거나 설사·잔변감·복통 등을 유발한다. 궤양성 대장염을 수십년간 앓으면 대장암이 발생할 수 있다. 이창균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나이·성별을 떠나 복통이나 설사가 4주 이상 지속되거나 혈변이 보이면 주저 없이 전문의 진료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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