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에 대한 재판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검찰과 삼성 변호인단이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오는 10월22일 1차 공판준비기일 후 본격적으로 혐의를 다투는 재판은 수개월 뒤에 비로소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통 공판 절차는 검찰이 ‘칼’, 피고인 측이 ‘방패’가 되지만 삼성 사건의 경우 본격적인 재판 전에는 그 역할이 뒤바뀐다. 변호인단은 검찰의 수사 과정 전반을 문제 삼고 재판에 사용될 증거를 최대한 줄여나가야 하는 만큼 검찰의 수사 정당성을 계속 공격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삼성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장부터 문제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2017년 최서원(최순실) 측에 수백억 원대 뇌물을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혐의로 이 부회장이 처음 법정에 섰을 때도 삼성 변호인단은 ‘공소장 일본주의’부터 강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판사가 사건에 관해 예단하지 않도록 하는 법 원칙이다. 원칙적으로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하고 그 외 서류나 기타물건을 첨부하거나 인용해서도 안 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형사재판은 판사가 백지에서 검찰과 피고인의 입장을 수렴해 백지를 하나하나 채워나간 뒤 판결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2017년 당시 삼성 변호인단은 일례로 박영수 특검이 작성한 공소장 내용 중 이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 자리에 오갔다는 대화 내용을 직접 인용 부호를 써서 “이 부회장은 대화 내용을 인정한 적 없고 박 대통령 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떤 근거로 둘 사이 대화를 직접 인용 형태로 기재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었다.
삼성 변호인단은 이번 역시 133쪽 분량의 공소장을 살펴보고 판사가 예단할 수 있는 표현 등을 일일이 찾고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검찰은 통상적으로 “혐의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기 위해 쓴 표현일 뿐 예단하거나 단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다고 한다.
공소장을 두고 다투는 첫 단계가 지나면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하는 증거에 대한 증거능력을 두고 긴 싸움을 벌일 예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장기간 수사로 수집된 많은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갖고 양측이 싸우는 것만 해도 최소 한 달 넘게 걸릴 수 있다”고 봤다. 삼성은 검찰이 그동안 여러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자료들의 증거능력이 없음을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의 다른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압수수색 당시 확보한 자료는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서만 사용해야 하고 자본시장법 위반 등 삼성물산 합병 의혹 관련 혐의를 입증하는 데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게 변호인단의 논리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당시 수사팀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을 때 특정 혐의만 명시하지 않고 범위를 넓혀 해당 혐의가 발생한 원인까지 파악하기 위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했을 경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특수 검사들은 주로 영장을 발부받을 때 범행 자체뿐 아니라 범행 동기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영장 청구를 한다”고 말했다.
재판에 제시될 검찰의 증거들에 대해 삼성 변호인단은 검찰이 이 부회장 등을 기소한 지난 1일 입장문을 낸 적 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설명한 증거들은 모두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나 수사심의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제시돼 철저히 검토됐고, 다시 반박할 가치가 있는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새로운 내용이 없고 이미 다 철저히 검토됐다면 증거능력으로 또 다투지 말고 증거를 신속히 인정해 재판에 임하고 사법 리스크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고 꼬집기도 한다.
재판 전부터 ‘해프닝’이 벌어지는 등 신경전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한겨레’에서 ‘삼성 측이 이 부회장의 삼성생명 매각과 관련한 일부 혐의를 구속영장 청구 전 변호인을 통해 빼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고, 삼성은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한겨레는 검찰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라며 이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삼성은 “범죄사실을 전혀 모르는데 변호인이 수사팀에 관련 내용을 빼달라고 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며 “더욱이 삼성생명 매각 건은 검토 단계에 그친 것으로 범죄사실 중 지엽말단적 경위 사실에 불과해 이를 제외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이 사실일 경우 삼성과 변호인단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단순 ‘해프닝’도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을 비롯해 기소된 11명의 삼성 전·현직 고위관계자들 중 김신 전 삼성물산 사장은 공소장을 송달받지 않았다. 이유는 ‘폐문부재’다. 다만 11명 피고인들의 변호인들에게 모두 공소장이 송달됐고, 김 전 사장에게 공소장이 공시송달 되면 공판 절차가 지연되는 것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시송달이란 당사자에게 공소장이 직접 전달되지 않더라도 공소장을 외부에 공개함으로써 공소장을 당사자가 받아 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검찰 기소로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 재판은 1년 안팎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피고인이 11명인 데다 혐의도 다툼의 여지가 크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국정농단’ 재판은 뇌물을 공여하면서 진행해야 했던 삼성 승계 작업을 ‘무엇(what)’으로 봤다면, 이번 재판은 승계작업을 ‘왜’, 그리고 ‘어떻게’ 했는지 따져보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불기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기소를 강행한 이상 재판을 통해 검찰은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해석된다.
삼성 재판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가 6월26일 불기소 의견을 내기 전인 6월18일에 세계적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재벌들은 법적 문제에 빠질 때 ‘국가 이익’과 같은 고귀한 가치를 준법정신보다 먼저 내세워왔다. 그 관행이 한국사회에 더 먹히는지는 향후 몇 개월 뒤에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손구민·이희조기자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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