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해 소속 국회의원들이 연루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충돌’ 사건의 첫 정식재판에 출석해 “권력의 폭주와 불복을 막기 위한 정당방위가 어떻게 불법이 된다는 말이냐”라면서 “대한민국 민주공화제가 흔들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전 대표는 2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패스트트랙 사건 첫 공판에서 “국민께서 기회를 주셨는데 이 정권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 총선 후 지난 5개월, 불면의 밤과 회한의 나날을 보냈다”면서 “국민은 저에게 국가를 바로 세우고 강하게 하라고 명령했지만, 명을 받드는 데 실패했다. 저의 부덕함으로 인해 선거에서 패배했고, 나라는 무너지고 약해졌다.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황 전 대표는 “저는 실패했으나 야당을 외면하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야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같이 무너진다. 그러면 결국 모든 국민이 노예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면서 “벌써 그런 전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행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법원 등 사회 곳곳에서 수많은 갈등으로 현실화하고 있다”고 상황을 짚었다.
아울러 황 전 대표는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 처리를 저지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선거법 개정안은 공정에 어긋나고, 공수처법은 정의에 반한다. 공정과 정의의 본래 가치를 비틀고 왜곡했다”고 지적한 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악법을 어떻게 통과되도록 방치할 수 있겠는가. 이는 국민에 대한 배임이고 국가에 대한 배신이다. 그래서 우리가 결사 저지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또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면 저로 충분하다. 무더기로 기소된 당직자 27명이 아니라 저만 벌하라”면서 “기소된 이번 사건에 대해 저는 전혀 부끄럽지 않다. 다만 힘이 모자라서 실패한 것이 안쓰럽고, 또 힘을 더욱 잃어버린 것이 부끄럽다”고도 했다.
앞서 오전 재판에 출석했던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역시 “패스트트랙 충돌은 다수 여당의 횡포와 소수의견 묵살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 전 원내대표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 국가의 일을 하다가 법정에 서게 된 것에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당시 원내대표였던 내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이어 “품위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점은 후회하고 반성하지만 정말 두려워해야 할 국회의 모습은 ‘침묵의 국회’”라며 “정치의 사법화보다는 정치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지난해 4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 등을 패스트트랙에 상정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보좌진들 간에 벌어진 충돌이다.
황 전 대표와 나 전 원내대표 등은 당시 국회 의안과 사무실, 정개특위·사개특위 회의장을 점거해 회의 개최를 방해한 혐의로 지난 1월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기면서 민주당 전·현직 당직자 10명도 공동폭행 등 혐의로 함께 기소했다.
재판부는 우선 채이배 전 의원을 감금한 혐의를 받는 나 전 원내대표 등에 대한 다음 공판기일을 11월16일로 정했다.
감금 혐의가 적용되지 않은 피고인들의 다음 재판 일정은 추후 정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대부분의 피고인은 출석했지만 민경욱 전 의원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 이에 재판부는 민 전 의원에 대한 구인장 발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경훈기자 styxx@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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