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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67> ‘중화민족’ 뮬란이 야만족에 맞서 中 지켰다?…美 디즈니의 위험한 '역사' 만들기

■뮬란은 어떻게 ‘중국인’이 됐나

중국 베이징의 한 극장에 ‘뮬란’의 상영을 알리는 홍보판이 붙어 있다. ‘뮬란’의 중국판 이름은 ‘화목란(花木蘭)’이다. /최수문기자




미국 디즈니의 영화 ‘뮬란’은 홍콩 민주시위 탄압 옹호와 신장위구르 소수민족 탄압 공안기관에 감사 표시 등 각종 논란에 휘말렸지만 더 큰 문제는 잘못된 역사의 해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서 일어난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이고 결국 한족(漢族)의 다른 말에 불과한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중국 정부의 자의적인 역사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디즈니의 영화 ‘뮬란’은 평화로운 중국에 야만족이 침략을 하고 이를 여성인 뮬란이 참가한 중국군이 물리친다는 내용이다. 이는 디즈니의 1998년 애니메이션이나 이번 실사 영화에서도 동일하다. 물론 중국 내에서 제작된 드라마·영화도 비슷한 스토리 전개를 보인다.

디즈니의 이번 영화에서 류이페이(유역비)가 연기한 뮬란은 전형적인 중국인(한족)의 모습이다. 물론 영화속 인물들이 다소 국적불명의 옷을 입고 행동하지만 이는 서구에서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 때문이지 뮬란이 중국인으로 해석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당연히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해석이다. 주류 역사학계에 따르면 뮬란은 ‘목란사(木蘭辭)’라는 옛 노래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목란(木蘭)’인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무란(한어병음 로마자 표기 ‘mulan’)’이고, 영어식으로 하면 ‘뮬란’이 된다. 이 노래에서 뮬란은 중국 남북조 시기 북조 국가인 ‘북위(서기 439~534)’ 사람이다. 북위란 이름은 중국 국가처럼 보이지만 사실 몽골족의 선조 격인 선비족이 중국 중원을 점령해 세운 나라다. 뮬란도 선비족일 가능성이 크다.

‘목란사’라는 노래는 오랫동안 구전되다가 송나라 때 편찬된 ‘악부시집(樂府詩集)’이라는 책에 실렸다. 이는 전통시대에는 흔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구전되던 노래가 한문으로 적히곤 했다.

모두 333자의 한자로 이뤄진 ‘목란사’의 내용은 이렇다. “(외적이 쳐들어오자) 임금이 전국에 동원령을 내렸다. 목란의 집에도 징집 통지서가 왔는데 아버지는 연로해서 징집에 응할 수가 없었다. 목란에게는 언니와 어린 남동생이 있을 뿐이었다. 결국 목란이 남장을 하고 출전한다. 말도 시장에서 샀다. 이후 북쪽 연산·흑산 등에서 싸워 큰 공을 세웠다. 수도에서 임금의 포상을 마다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목란이 집에서 여자옷으로 갈아입었는데 같이 온 동료 군인들이 깜짝 놀랐다. 12년 동안이나 전쟁터에 있었지만 목란이 여자라는 것은 이날 처음 알았다.”

농경사회인 중국 전통에서 여자가 무술을 한다거나 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후한말 이후 100년 전쟁인 ‘삼국지’나 송나라 배경의 ‘수호지’에도 여자가 무기를 드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부족 간의 다툼에 익숙한 유목민 여성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뮬란이 아버지 대신 전쟁터에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는 것이다.

‘목란사’ 노래에는 임금이라는 표현이 두 군데 나오는데 ‘가한(可汗)’과 ‘천자(天子)’다. 유목민족은 자신의 수령을 ‘칸(Khan)’으로 불렀는데 ‘가한’은 ‘칸’을 한자식으로 쓴 것이다. 물론 칸은 ‘하늘의 아들’인 천자이기도 했다. 이는 노래가 한자로 기록되면서 번역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뮬란이 한족이었다면 절대로 임금을 ‘가한’으로 부르지 않았을 테다. 중국에는 진나라 이래 ‘황제’라는 임금의 호칭이 있다. 북위에서는 선비족을 지배층으로, 한족은 피지배층으로 구성됐는데, 물란은 선비족 지배층이었음이 분명하다. 이후 중국을 정복한 몽골족의 원나라나 만주족의 청나라에서도 전쟁시 우선 징집 대상은 자기 민족이었다. ‘목란사’에서 뮬란이 시장에서 말을 사서 출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유목민족들은 당연히 여자도 말을 잘 탔다.

디즈니 영화 ‘뮬란’의 한 장면. ‘목란사’에서는 뮬란이 12년 전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후 여자임을 밝힌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목란사는 그 이야기의 매력으로 인해 중국 내에서도 이후 수많은 ‘확장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기존 ‘목란사’에는 없었던 뮬란의 성이 나중에 ‘화(花)’로 덧칠해지기도 했다. 선비족들은 이후 중국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뮬란’ 이야기도 중국화 돼 갔다.

뮬란은 이후 명나라 시기의 ‘자목란체부종군(雌木蘭替父從軍)’을 비롯해 1,000여년간 소설이나 희곡 등으로 다시 씌어지면서 ‘충’과 ‘효’를 강조하는 중국에서 모범적이지만 유별난 행동을 한 여성 이야기가 됐다. 연로한 부모 대신에 군대에 가는 것은 ‘효’의 상징으로, 외적으로부터 나라와 황제를 지킨다는 것은 ‘충’의 상징으로 각각 포장됐다. 디즈니의 ‘뮬란’ 영화는 이런 중국의 뮬란 프레임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다만 뮬란의 중국화는 온갖 무리를 동반했다. 대표적인 것이 디즈니의 이번 영화에서도 나왔듯이 뮬란이 어릴 때부터 무술을 좋아했다는 설정이다. 전통적인 중국 여성상에서 어긋나는 캐릭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선비족 뮬란에게는 당연한 말타기가 ‘한족 뮬란’에서는 특수한 기술이 된 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 ‘뮬란’에서는 모두 전투 중에 뮬란이 여성인 것이 밝혀지고 이에 부대에서 추방되는데 이는 원래 ‘목란사’와 다른 내용이다. ‘목란사’에서는 뮬란이 12년 만에 집에 돌아온 후 스스로가 여자옷으로 갈아입는다.

디즈니 ‘뮬란‘은 실제 역사도 비튼다. 뮬란의 나라를 침략한 이는 이전 애니메이션에서는 훈족(흉노족)으로, 이번 실사영화에서는 유연족으로 각각 나온다. 흉노족은 중국사에서는 진·한대의 북방 유목민족이고, 유연족은 남북조시대의 북방 유목민족이다. 유목민족은 각각 부족 단위로 있으면서 자신들을 부르는 호칭이 달랐다. 특정 부족이 전체 유목민족을 통일할 경우 자신의 부족명이 전체의 이름이 되곤 했다. 흉노나 돌궐, 유연, 선비, 몽골 등이 모두 사실은 같은 민족인데 주도 부족의 호칭에 따라 중국에서 달리 불려진 것이다.

따라서 뮬란의 나라를 침공한 민족이 유연족인 것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한다. 선비족은 유연족보다 남쪽, 즉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있었는데 이들이 남하해 중국을 정복한 상태에서 빈 유목공간(현재의 몽골)을 차지한 것이 바로 유연족이다. 유연족은 과거 흉노족이 그랬던 것처럼 중원지역을 약탈하곤 했다. 즉 뮬란의 전쟁은 여전히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과, 새로 중국을 정복하고 농경민을 지배하게 된 구(舊) 유목민 간의 전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야만족’ 유목민과 ‘문명인’ 중국인을 대치시키면서 중국의 우월성을 주장하고 있다.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물론 이러한 뮬란 이야기는 중국의 ‘중화민족 만들기’의 일부분일 뿐이다. 중국은 과거 일반적이던 ‘한족’이라는 명칭이 이런 여러 민족을 포괄하는데 적당하지 않자 ‘중화민족’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 1988년 ‘중화민족 다원일체구조론’으로 정리한 페이샤오퉁의 작업이 이의 최신판이다. 신장위구르나 티베트, 몽골(내몽골), 만주 등 지역에서 비(非)한족(소수민족)의 분리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을 모두 중국인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은 지금은 보편적인 이름이 됐다. 현재 중국의 정식 국가명도 ‘중화인민공화국’이다.

지난 2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중국 내몽골(네이멍구)의 ‘중국화 교육’에 반대하는 몽골인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외신들에 따르면 최근 내몽골에서 학교 교육을 둘러싸고 논란이 발생했다. 중국 정부가 이번 9월 학기부터 몽골어로 가르치던 ‘중국어’ 과목을 중국어로 가르치는 ‘어문’(국어) 과목으로 대체하는 등 몽골어 교재를 대폭 줄이고 중국어 사용을 늘였다. 이에 대해 몽골족들이 민족어 말살이라며 항의하는 상황이다. 중국정부가 본격적인 탄압에 나서 중국 내에서의 시위는 잦아들었다. 하지만 이웃 몽골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의 논란은 여전하다.

중국에서 그동안 ‘중국화의 우등생’이라고 불리고 내몽골에서 이런 정도라면 신장위구르나 티베트에서의 중국화와 이에 대한 반발은 훨씬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중국어 위주의 교육은 이미 신장위구르·티베트에서 표준이 돼 있다. 최근 만주에서 조선족에게도 중국어 교재 사용을 늘리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민족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전체 소수민족을 ‘중화민족’으로 바꾸기 위해 교육에서부터 손을 댄 것이다.

영화·드라마 등을 통한 이미지 조작은 이미 광범위하게 행해져 미국 할리우드도 중국의 이런 시도를 당연하게 여기게 됐다. ‘뮬란’ 실사영화에서 야만족으로 나오는 유연족도 지금의 몽골의 조상뻘 되는 유목민족이다. 19세기까지는 동포였던 유연족과 선비족이, 21세기에는 몽골과 중국으로 갈라치기가 된 셈이다.

한편으로 중국인 한족들도 각각 ‘중국’에 복속된 정도에 따라 다른 언어를 갖고 있다. 베이징 언어와 상하이 언어, 광둥 언어, 쓰촨 언어 등이 다르다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전체 중국 한족 영토를 일반적으로 7개 방언 언어군으로 구분하고 있는 상태다. 언어군이 다를 경우 대화가 되지 않는다. 이는 유럽에서 영국어와 프랑스어, 독일어가 서로 다른 것과도 비슷하다.

중국 정부는 자국내 언어불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베이징 표준어인 ‘보통화’를 전국에 보급하는 노력에도 힘을 쏟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14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23회 전국보통화 보급선전주간’ 행사에서 중국 교육부는 “(중국) 전국범위에서 보통화 보급률이 80.72%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즉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를 알면 중국내 80% 인구 지역에서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교육부는 이와 관련, 시짱(티베트)자치구 등 이른바 ‘삼구삼주(三區三州)’라고 불리는 빈곤지역에서는 보통화 보급률이 61.56%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보급을 확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연히 베이징 언어인 보통화의 침투가 강화되면 소수민족 언어는 빠르게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현지 소식통은 “중국이 소수민족 지역에 대한 중국어 교육정책을 강화할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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