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에서 “금융의 세계만큼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못한 분야도 없다”고 꼬집었다. 반복되는 위기를 망각한 채 탐욕에 빠져 또 다른 위기에 처하는 시장을 질타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 영국 공인재무분석사협회(CFA)는 이를 ‘금융기억상실증(financial amnesia)’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튤립 버블, 미시시피 버블, 남해회사 버블까지, 잊을 만하면 잉태되는 거품에는 돈에 대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품이 터진 후 잔해를 제거하는 작업이 얼마나 잔인한지 뻔히 알면서도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거대한 돈 풍선을 거듭해 만들었다. 1907년 시장패닉, 1929년 대공황, 1997년 외환위기, 2008년의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위기에는 공통의 원인이 있었지만 교훈은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송두리째 지워지곤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각국은 위기 돌파를 명분으로 여한 없이 돈을 뿌렸다. 벤 버냉키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헬리콥터 머니 이후 이 같은 돈의 향연을 맛본 일은 드물었을 것이다. 무차별적인 돈의 투하를 통한 부양을 주장해 이단으로 취급되던 현대화폐이론(MMT)이 박수를 받을 정도이니 경제학의 본류마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꺼낸 ‘평균물가안정목표제’는 돈 풀기의 결정체이자 통화 정책의 유산을 버릴 수 있음을 예고한 무서운 선언이었다.
우리는 어떤가. 법을 바꿔서라도 돈을 더 풀 수 있도록 한국은행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외침이 이렇게 컸던 적은 없었다. ‘남대문사(寺)’라는 비아냥에 익숙해 있던 한은으로서는 권력을 주겠다는 목소리가 무척 어색했을 것이다. 어찌 됐든 한은은 발권력을 마음껏 품어냈고 덕분에 부동산과 증시에는 연일 돈의 합창곡이 울려 퍼지고 있다. 20·30대는 아버지 세대에 빼앗긴 자산 증식의 기회를 조금이라도 찾으려 전사(戰士)가 된 것처럼 집을 패닉바잉하고 동학·서학개미가 돼 자본의 영토를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돈의 파티가 끝없이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거품은 곧 꺼지기 마련이다. 올 1·4분기 258조달러까지 늘어난 글로벌 부채 규모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331%에 달하며 신기록 행진을 잇고 있다. 헬리콥터 머니를 쏟아부을 때도 10% 초반이던 미국의 광의통화량(M2) 증가율은 올 들어 7개월 만에 19.54%까지 치솟았다. 우리는 더하다. 나랏빚은 차치하고 민간 부채도 이미 위험 단계에 들어섰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1·4분기 기준 97.9%로 세계 최상위다. 명목 GDP와 민간 신용의 비율을 보여주는 부채위험 평가지표인 ‘신용갭’은 9.4%포인트로 2009년 4·4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과거 금융위기들이 10%포인트를 넘어설 때 발생했던 점을 기억하면 섬뜩하다.
부실의 칼이 턱밑을 찌르는데도 어느 누구도 ‘부채의 파도(waves of debt)’를 얘기하지 않는다. 도리어 유력 대선주자는 금융을 복지의 부속품인 양 얘기하고 금융당국 수장은 세금으로 투자자의 손실을 메워주는 해괴한 금융상품에 장단을 맞춘다. 사방을 둘러봐도 부실의 열차를 멈추려는 기관사를 찾을 수 없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정부는 부실의 폭탄을 제거해야 하는 얄궂은 운명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과도한 빚이 초래하는 불황의 모형을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에 담았다. 물론 그가 살던 20세기 초중반의 환경은 지금과 다르다. 그럼에도 불안한 기운은 억누르기 힘들다.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통제의 영역’에조차 두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차례의 금융위기를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억측일까. 우리는 닥쳐올 또 한 번의 위기를 마주할 준비를 얼마나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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