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지역화폐 보고서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치열하다. 원래 지역화폐는 국가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되는 돈을 의미한다. 법적으로 화폐가치를 인정할 수도 있지만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이 합의로 만드는 방법도 있는데 캐나다 등 외국에서는 실제로 이용됐다. 품앗이 관습을 금액으로 더 명확히 표시해 주고받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는 지역화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발행하는 상품권을 말한다. 돈이 아니므로 공과금으로 낼 수 없고 학교 등록금으로 쓸 수도 없다. 사용 지역과 업소 제한으로 상품권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아 할인 발행을 한다. 예를 들면 1만원짜리 상품권을 9,000원에 팔고 이 상품권을 받고 물건을 판 상점이 지자체에 청구하면 1만원을 지급하며 차액은 발행자가 부담하는 것이다.
지역 수요를 늘리기 위한 상품권이므로 원칙대로라면 지자체가 부담해야 하는데 국가가 대부분을 떠안는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이 같은 상품권 발행을 가장 반기는 사람들은 지방행정을 맡은 자치단체장이다. 국가가 보조금을 줘가며 자기 지역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도록 장려하는 셈이니 선출직인 단체장들이 앞다퉈 나선다.
지난 2017년 3,000억원 규모였던 지역화폐 발행액이 올해 9조원, 내년 예산안에서는 15조원으로 늘어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다. 할인 발행에 따른 국가 보조금만도 1조원을 넘는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목적은 그 지역 경제를 촉진하기 위함인데 하지 않는 곳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국 229개 지자체에서 이를 발행해 효과가 상쇄되고 오히려 경제활동을 파편화해 효율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미국의 50개 주가 각각 다른 돈을 사용한다면 소비자들의 불편은 물론 생산자들 간의 경쟁을 통한 품질 향상도 어렵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방 경제가 낙후한 상태이며 점점 더 나빠지고 있으므로 그 대책 중 하나로 지역화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도 발행되며 강남사랑 상품권의 경우 올여름 25분 만에 100억원어치가 완판된 적도 있다. 지역 균형을 목적으로 한다면 서울은 제외하고 대도시 지역이 아닌 농촌을 중심으로 발행하도록 해야 맞다.
지역사랑상품권은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에서는 쓸 수 없고 전통시장과 식당 등 소상공인을 가맹점으로 하도록 법에 정해져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효과도 부수적인 목표로 한다. 그런데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이 진작부터 통용되고 있다. 지역 제한 없이 사용 가능한 국가 상품권이 선출직 지자체장과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 지역상품권에 밀려나는 형국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경제적 약자의 보호 효과가 늘었는지 의문이다.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보조금은 그 자체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없다. 쌀이나 과수를 생산하는 농민들에게 농업기구를 지원하거나 품질 개량을 위한 기술지도를 하는 게 낫다. 전통시장 시설을 현대화하고 식당의 위생설비를 지원하는 게 실질적으로 수요를 늘리는 길이다. 지자체장들이 손쉬운 국고보조금에 기댄 상품권 발행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내와 외국 기업 유치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를 줄이기 위해 주민들과 지방의회를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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