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사람과 사람이 빚어내는 따뜻한 정과 휴먼 드라마를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신파 코드와 뻔한 이야기에도 사람이 빚어내는 따스함은 추석연휴 가족 관객들을 겨냥하기 충분하다.
1993년 인천, 까칠한 사채업자 두석(성동일)과 종배(김희원)는 떼인 돈을 받으러 갔다가 얼떨결에 9살 승이(박소이)를 담보로 맡게 된다. 승이 엄마의 사정으로 아이의 입양까지 보내게 됐지만, 부잣집으로 입양 간 줄 알았던 아이가 엉뚱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은 다시 승이를 데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담보가 보물이 되는 시간을 보내며 이들은 가족보다 더 특별한 가족이 되어간다.
“아저씨, 담보가 무슨 뜻이에요?”(승이) “‘담’에 ‘보’물이 되는 거”(두석) 두 사람의 대화로 영화는 함축된다. 사채빚 75만원을 담보로 얼떨결에 가족이 된다는 설정은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드라마가 켜켜이 쌓이고, 관객의 공감을 살만한 보편적 정서를 이끌어낸다. 또 ‘진정한 가족의 의미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인다. 악연으로 만났지만 천륜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에서 한 번쯤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게끔 하는 인류애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레트로 감성이 녹아든 영화는 관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와 소품들이 등장한다. 삐삐와 공중전화 부스, 서태지와 아이들과 묵직한 씨디 플레이어, 집안 곳곳에 있는 자개농과 두석과 종배가 입고 나오는 쓰리 버튼 양복까지. 관객들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영화판 ‘응답하라’ 시리즈를 떠올릴 수 있다.
다만 관객의 눈물을 쥐어짜기 위한 신파에 대한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두석이 승이에게 왜 그렇게 애착을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또 영화 중반부터 억지 감동을 끌어내려는 몇몇 요소도 눈에 띄게 작위적이다. 특히 후반부 설정은 무리수에 가까워 애써 쌓은 감동과 울림을 무너뜨리고 만다.
이야기의 개연성이 다소 아쉬운 지점으로 남지만, 이를 상쇄하는 건 탄탄한 연기 내공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성동일은 극 초반 이전 작품에서 보여졌던 특유의 ‘츤데레’ 기질을 많이 보여주나, 중반부터 진중해지며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과 표정만으로 부성애를 그려낸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감정을 억눌러 슬픔을 더욱 배가시킨다.
영화의 진짜 보물은 어린 승이를 연기한 아역 배우 박소이다.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승이 역을 맡은 박소이는 성인 연기자 못지않은 섬세한 표현력으로 관객의 감정선을 이끌고 간다. 29일 개봉.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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