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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카르추크 "폴란드문학의 힘, 거리 두되 개방적인 문화에 있어"

2018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국 언론 인터뷰

"오랫동안 작품 못쓰다가 이제 집필 시작"

"미래·평등·여성·동물 권익 위한 재단 설립"

"한국은 제 조국 폴란드와 비슷한 점 많아"

올가 토카르추크./Karpati&Zarewicz·ZAIKS




바야흐로 노벨상의 계절이다. 노벨문학상은 다음 달 8일(현지시간) 발표 예정이다. 지난해엔 폴란드 올가 토카르추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전 세계로부터 수상자에게 인터뷰가 쇄도했다. 한국 언론도 출판사 민음사를 통해 공동 인터뷰에 나섰고, 새 노벨 문학상 주인공이 발표되기 직전 토카르추크로부터 답신이 왔다. 토카르추크는 “공인이 됐고 거리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게 돼 조금 더 불편해졌다”며 “자유 일부를 빼앗겼고, 지금까지 해 오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의무와 역할이 많아졌다”고 근황을 전했다. 이어 “꽤 오랫동안 작품을 쓰지 못했고, 그 점이 상당히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집필을 시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인터뷰를 통해 오고 간 주요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인터뷰 번역은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가 맡았다.

■폴란드에서 벌써 다섯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왔습니다. 폴란드 문학의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폴란드 문화는 항상 ‘경계의 문화’였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서구(西歐) 문화권과 일정한 거리를 둔 상태로 형성돼 왔죠. 역사적·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폴란드 문화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종류의 영향에 늘 개방적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폴란드 문학은 차별화된 독보적인 잠재력을 갖게 됐고, 여느 서구 문학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회 계층이 등장하는 고유한 문학이 만들어졌습니다. 폴란드 문학이 놀라운 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저력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지역’이라는 공간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일깨워 주는 인류 체험의 보고(寶庫)라고 생각합니다. ‘중앙’으로부터 동떨어진, 뻔하지 않은 것들, ‘주류’에서 당연시하는 것들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것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작품을 창작할 때 저는 일상적이지 않은 것, 뭔가 다른 것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과 노벨 문학상을 동시 수상했습니다. 작품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폴란드 시골 마을에 틀어박혀 쓴 글이 서울이나 런던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의 독자들에게까지 전해진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곳의 독자들도 폴란드 독자들과 똑같은 감흥을 느낄까 저는 항상 궁금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서로를 놀랍도록 닮아 있고, 비슷한 존재론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제가 사는 곳의 풍경이나 관습이 다른 대륙의 독자들에게 이국적으로 다가갈 때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사의 핵심, 생의 본질은 다 같다고 봅니다.

■이른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에 속합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부담감은 없는지요?

노벨상 수상에 있어 나이가 특별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들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제가 여전히 젊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얼마 전 저는 제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인류의 미래나 세상의 평등, 여성과 동물의 권익 같은, 제가 평소 고민하던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2006년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적 있으시죠. 한국 작가들과 한국 문학에 관한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방문은 제게 너무도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사는 도시, 브로츠와프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한국 식당에 가서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당시 최성은 교수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한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지방의 한 사찰에서 며칠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때 겪은 다양한 체험이 『방랑자들』(민음사, 2019)의 몇몇 에피소드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몇몇 한국 작가들과도 친분을 맺게 되어 서신도 수차례 교환했습니다.

한국은 저를 매혹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제 조국 폴란드와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거든요. 사람들의 기질, 강대국에 둘러싸인 수난의 역사, 일을 대하는 자세 등등에 있어서요.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작가로 기억됐으면 하는지요?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필립 딕의 책에서 아름다운 비유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작가는 까치와 같다.”라고 했습니다. 까치는 쓰레기더미를 뒤지며 그 속에서 장신구나 사탕 포장지 등 온갖 반짝이는 것들을 찾아내어 자신의 둥지로 물고 옵니다. 저는 그의 비유가 마음에 듭니다. 왜냐하면 이따금 저도 제가 까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버려졌지만, 여전히 반짝이는 것,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을 발굴해서 오랫동안 간직합니다. 그리고 적절한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것들로 소설을 엮어 냅니다.

오늘날 작가들 사이에는 비관적인 사고가 팽배합니다. 새로운 미디어들이 등장하면서 문학이 위축되고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죠. 또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바뀌면서 정서적으로, 또 지적으로 문학 텍스트에 몰입하는 전통적 의미의 책 읽기 능력을 인류가 점차 상실하리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문학,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창조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 관심과 열정을 갖는 사람은 실제로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작가의 글이나 말보다는 정치인 혹은 경제인들의 결정이나 과학자들의 발명품, 새로 출시된 약품들을 훨씬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런 것들이 세상을 시시각각 바꾸고 있으니까요.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야고보서』를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수메르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 온 『세상의 무덤 속의 안나 인』도 제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15년 전쯤에 쓴,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인데요, 외국어로 많이 번역되지는 못했습니다.

대놓고 제 삶을 반영하지는 않더라도 제가 쓴 모든 책은 어떤 의미에서는 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의 깊은 독자들은 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항상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신작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민음사, 2020)와 『낮의 집 밤의 집』(민음사, 2020)이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는 어떻게 쓰게 됐는지요.

2009년 때마침 제게 반년이라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뭔가 가벼운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막상 범죄 추리물의 구성을 띤, 스릴러류의 작품을 써 보겠다고 결심하고 나니 장르의 외형적 조건을 충실히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중 소설의 기본 원칙, 즉 분량이 너무 많지 않고, 난해하지 않으며, 삽화가 들어간 책을 내기로 결심했습니다. 체코의 만화가 야로미르 슈베이지크가 삽화를 맡았는데요, 일러스트를 보자마자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슬픈 그림들이었으니까요. 소박한 의도로 시작했지만,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작품에 깊이 빨려 들어갔고, 한동안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등장인물을 창조하고, 그들에게 다양한 상황을 부여하면서, 이따금 저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거대한 신화적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작품이 본래 제 스타일에서 그리 많이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살상당하고 학대당하는 동물과, 인간의 탐욕과 무신경함에 대해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따금 저는 세상에 온갖 불행이 난무한 것을 볼 때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바꾸기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주인공 두셰이코와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두셰이코는 그렇게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세상이란 건, ‘이렇다’라고 단정 지을 수도, 또는 ‘그렇지 않다’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이란 그저 존재할 뿐이니까요. 그렇기에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에 대한 우리 인간의 책무가 막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낮의 집 밤의 집』는 사실적이면서 허구적이고 허구적인 듯하면서 사실적인 인상이 강하게 듭니다.

이 작품을 통해 특정한 공간 속에 아로새겨진 개인의 경험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그러한 경험들을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사실적인 방식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경험들은 훨씬 폭넓고 방대해서 그 안에는 언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불확실하고 이성적인 부분들, 나아가 신비주의에 가까운 요소들도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바로 그런 영역을 탐험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요?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두 권의 신간을 꼭 읽어 보시라고 여러분께 진심으로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제가 쓴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신 독자분들이라면 이 두 권의 책에서 뭔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벌써 수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의 방문이 지금까지 내내 제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간직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계기가 마련되어 여러분께 갈 수 있기를, 그래서 한국의 독자분들을 직접 만나 뵐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안부 인사를 전합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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