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펀드·신탁·장외파생상품·변액보험 등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상품을 은행에서 가입하면 위험성을 명시한 설명서를 추가로 받고 불완전판매 여부를 점검하는 ‘해피콜’을 받게 된다. 은행이 판매하는 예금이 아닌 모든 상품에 대한 최종 책임은 임원급 협의체를 거쳐 이사회에 둔다. 지난해부터 각종 사모펀드 사태로 불거진 내부통제 부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이지만 은행권에서는 “사실상 당분간 은행에서 상장지수펀드(ETF)도 판매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은행연합회는 28일 18개 은행장이 참여하는 이사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비예금상품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제정했다. 각 은행은 올해 말까지 모범규준을 자체 내규에 반영해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모범규준은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를 계기로 금융감독원이 주도해 은행권 공동으로 마련됐다.
예금·대출 외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금융상품이 적용 대상이다. 단 변액보험을 제외한 보험과 국공채·머니마켓펀드(MMF)·환매채(RP) 등 각종 채권, 채권으로 운용되는 신탁·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ISA) 등은 제외된다. 대상 상품은 임원급 협의체인 ‘비예금 상품위원회’에서 기획·선정부터 판매, 사후관리까지의 모든 과정을 심의받아야 한다. 이곳에서 심의·결정한 내용은 행장과 이사회에 주기적으로 보고한다. 원금손실이 일어날 수 있는 상품을 은행이 팔았다면 경영진과 이사회가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한 것이다. 다만 위원회 운영의 실효성을 위해 △원금손실 위험이 20%를 초과하고 파생상품이 내재된 고난도 금융상품 △해외대체펀드 △투자등급 3등급 이상 중위험상품이 아니면 실무급 부서장협의체에 심의를 위임할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는 이런 상품에 가입할 때 위험내용을 문답 식으로 설명한 ‘비예금상품설명서’를 추가로 작성해야 한다. 계약 후 7영업일 안에 은행으로부터 해피콜도 간다. 이때 판매직원으로부터 상품 설명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판단되면 손해배상을 포함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동안 65세 이상 고령자에 한해 의무사항이었던 판매과정 녹취는 고난도 상품에 가입하는 모든 소비자 대상으로 확대된다. 고난도 금융상품처럼 비대면으로 설명이 어려운 상품에 대해서는 은행이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투자를 권유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은행권은 소비자 보호와 내부통제를 강화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앞으로 은행에서 투자상품 판매가 사실상 막힐 것이라고 우려한다. 공모펀드나 주식형펀드도 예외 없이 적용 대상에 들어가 판매 전 과정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A은행 관계자는 “이미 대중화된 ETF도 위험등급은 3등급 이상”이라며 “이사회 승인을 받아 적용 예외 상품을 정할 수 있다지만 이사회라는 조직의 특성상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간접투자를 원하는 은행 소비자의 수요가 오히려 갈 곳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B은행 관계자는 “한동안 은행에서 펀드 판매가 사실상 어려워져 간접투자 시장도 크게 위축될 것 같다”며 “소비자가 직접투자에 몰리면 그에 따른 위험과 부작용도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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