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가황(歌皇)’ 나훈아는 ‘건강 이상설’ 등 세간의 소문을 무색하게 할 만큼 여전한 카리스마와 가창력과 스타성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역시 나훈아’ ‘대체 불가한 최고의 가황’이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그의 소신 발언은 시청자들의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한편 힐링을 선사하고 있다.
나훈아는 지난 30일 방송된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 출연했다. 다시보기도 없는 딱 한 번만 진행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커다란 관심을 받았다. 나훈아의 오래 공백을 깬 방송인 데다 아이돌도 아닌 원로 가수의 비대면 공연이기 때문이다. 기대는 적중했다. 29.0% 기록하면서 이날 방송된 지상파 3사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KBS 2TV 주말드라마 정도를 제외하면 좀처럼 보기 어려운 시청률이다. 또 올레tv에서는 실시간 시청률이 순간 70%대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대체 불가능한 가창력과 퍼포먼스’는 여전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그의 소신 발언들도 화제가 되고 있다.
우선 그는 “역사책을 봐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며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했다. 이어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다”며 “IMF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냐.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가 없다. 말을 잘 듣는 우리 국민이 1등이다”고 덧붙이자 실시간으로 공연을 비대면으로 지켜보던 관객들이 열광했다. 그는 이어 대한민국 대신 “대한국민”이라고 외치며,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그동안 섭섭했던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작심한 듯 소신 발언을 이어 갔다. 그는 “나에게 신비주의라고 하는데 가당치 않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거다. 꿈이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잠적했다고 하더라”면서 “뇌경색에 걸려 혼자서는 못 걷는다고도 한다. 이렇게 똑바로 걸어 다니는 게 미안해 죽겠다”며 그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73년을 살아온 어른의 내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말들 역시 지친 시청자들을 힐링시키기에 충분했다는 평가다. “제가 잘 모르긴 해도 살다 보니까 세월은 누가 뭐라 해도 가게 되어있으니까 이왕에 세월이 가는 거 우리가 끌려가면 안 됩니다”라며 “세월의 모가지를 딱 비틀어서 끌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끌고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여러분, 날마다 똑같은 일을 하면 끌려가는 거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안 가본 데도 가보고. 나는 죄는 안 짓지만 파출소에 한 번 가서 캔커피 사드리고 ‘수고하십니다’ ‘구경하러 왔다’ 하고 한번 파출소 구경도 해봐야 합니다. 안하던 일을 하셔야 세월이 늦게 갑니다. 지금부터 저는 세월의 모가지를 비틀어서 끌고 갈 거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마음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무대 위에는 언제까지 설 것이냐는 진행자의 질문에는 잠시 망설이더니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려올 시간이라 생각하고요, 그게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분야에서의 최고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사람의 고뇌와 책임감 그리고 자리의 무게가 느껴지는 대목이라는 평가다. /연승·박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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