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자존감을 느꼈을 때가 언젠가 생각해보니 그건 배우를 할 때였어요.”
배우 송승환. 아역에서 출발해 친숙한 중견 연기자,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 라디오 DJ, 그리고 공연 제작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옷을 갈아입으며 활약해 온 그에겐 한동안 그 시작점인 ‘배우’보다 ‘공연 제작자’라는 수식어가 더 따라 붙었다.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기획자로서 좀처럼 연기자로 만나보기 힘들었던 그가 오랜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오는 11월 시작하는 정동극장 연극시리즈의 첫 작품 ‘더 드레서(THE DRESSER)’를 통해서다.
송승환은 8일 서울 중구 정동극장에서 열린 더 드레서 제작 발표회에서 “최근 10, 20년은 배우보다 공연 제작자로서의 비중이 컸던 것 같다”며 “연기자로 그 비중을 옮겨가는 시작이 이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승환의 연극 출연은 지난 2011년 4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인 ‘갈매기’ 이후 9년 만이다. 언 10년 동안 연극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었던 그를 무대로 불러낸 더 드레서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평가받는 로널드 하우드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겨울 영국의 지방 극장을 배경으로 인생 끄트머리에 다다른 노(老) 배우인 ‘선생님’, 그리고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한 드레서 ‘노먼’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인생의 회한과 관계, 주인공과 조연 등 삶에서 저마다 짊어진 역할 등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송승환은 ‘선생님’ 역을 맡았다.
수많은 캐릭터로 변신하면서도 정작 ‘배우 역할’을 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평생 무대와 함께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생님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늙어가는 배우의 이야기잖아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극 전체에 감정이 이입되는 이야기예요.” 자신이 평생 걸어온 길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그는 “배우에 관한 이야기 다룬 작품이 많지 않기에 대본 처음 봤을 때 바로 우리들 이야기라는 게 매우 친근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극 중 ‘선생님’은 노 배우이자 극단의 대표다. 연기자요 공연 제작사 PMC 프러덕션의 대표인 송승환이 여러모로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캐릭터다. 전쟁 중 공습경보가 울리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연극을 올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코로나 19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현 공연계의 상황과 맞물려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송승환은 “우리도 지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으냐”며 “지금 상황에서 와 닿는 게 컸다”고 전했다.
송승환의 연극 복귀에 화려한 연출진과 배우들이 선뜻 힘을 보태고 나섰다. 이번 공연의 연출과 각색은 뮤지컬 ‘김종욱 찾기’, ‘그날들’을 연출한 장유정이 맡았다.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공연에서 송승환과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장 연출에게 이번 작품은 5년 만의 연극 작업이다. 그는 “작품 선택에 있어 나나 송승환 선생님이나 이견이 없었다”며 “작품 속의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연극을 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에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승환과 합을 맞출 ‘노먼’ 역에는 안재욱·오만석이 캐스팅됐고, 정재은·배해선·송영재 등도 함께 무대에 오른다.
베테랑 배우들이 빚어낼 최고의 호흡은 11월 18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정동극장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다.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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