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경미스럽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닌데, 이야기 속 인물이 ‘말 잘 안 듣는 사람’이고, 작품도 영화 문법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그런 것 같네요. 지루한 걸 못 참는 성격도 나오는 듯한데, 사람들이 많이 하는 얘기를 또 하는 건 재미가 없거든요.”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경미 감독은 이번 작품도 ‘이경미스럽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대해 최근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이렇게 말했다. 여성 보건교사 안은영(정유미 분)이 인간 욕망의 부산물인 ‘젤리’와 맞닥뜨리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다. 이 감독은 지난 2008년 ‘미쓰 홍당무’로 데뷔할 때부터 독특한 이야기 전개와 인물 설정을 선보이며 주목을 끌었다.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독특한 B급 감성을 토대로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결이 다른 이야기를 선보인다. 덕분에 온라인상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호불호가 다소 엇갈린다. 그는 “그래도 극호감이 많은 것 같아 ‘살았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이 감독은 드라마를 만들면서 ‘여성 히어로물’을 염두에 뒀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모든 이야기는 여성이 주도하며, 한문교사 홍인표를 비롯한 남성들은 철저히 조력자 포지션이다. 그는 “독립적이고 포기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이 작품을 여성 히어로물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부족하고 소시민적이지만 조금씩 전진하는 모습이 친근하게 와 닿을 거라 봤다”고 설명했다. 전작들에 이어 여성들의 이야기를 만든 데 대해서는 “재미있다 생각했던 이야기가 대부분 여성 이야기였다”며 “여성 중심 이야기가 많지 않으니 저도 계속 만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동시에 이 드라마는 주인공 안은영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때로는 떠나보내며 고뇌하는 과정을 거쳐 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비롯해 고통 받는 인물들도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위치해 있다.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다 보니 원작의 따듯하고 성숙한 분위기와 달라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원작에 없는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는 대사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런 스타일이 나온데는 역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정유미의 공이 절대적이다. 이 감독은 “정유미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많이 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이 작품에선 순간적인 광기까지 엿보인다. 전작들인 ‘미쓰 홍당무’의 공효진,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이 보여줬던 여타 작품과 다른 얼굴이 정유미에게도 겹쳐 보인다. 이 감독도 “개인적으로도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며 “여성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움직임과 표정을 끌어내다 보니 다른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얼굴도 보이는 게 아닐까”하고 웃었다.
이 감독은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작품을 만들어낸다. 독특함이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드라마에는 양날의 검이다. ‘B급 감성’을 표방하는 기본 설정부터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다. 익히 들어 익숙한 반응이지만 너무 미움을 받으면 다음 작품을 만들기 힘들까 걱정도 했다고. 이 감독은 데뷔작 ‘미쓰 홍당무’를 내놓은 후 다음 작품을 개봉하기까지 8년이나 흘러야 했다. 그는 “그래도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하면 되레 작품이 나빠질 것 같다”며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하다 보면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하고 웃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기존 문법과 다른 드라마가 나와서 ‘올해의 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계속 하다 보니 제 언어를 흥미롭게 보는 분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인다.
시리즈는 다음 시즌으로의 전개를 강하게 암시하며 끝난다. 목련고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을지, 이어진다면 언제쯤 모습을 드러낼지 팬들의 관심이 많다. 이 감독은 “저는 이번 시즌만 계약했다. 계속할지는 넷플릭스가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이번 시리즈에 대해 “누가 시즌2를 맡게 돼도 이야기를 짤 수 있게 만든 ‘밑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독특한 매력의 시리즈를 정유미 배우와 이경미 감독 외 다른 사람이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절대적이다. 밑밥을 깔아놓은 사람이 수습까지 완료하는 그림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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