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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칼라즈 사건과 관용론

무지와 편견 뒤엎은 볼테르

군중의 근거없는 의심으로 거열형을 받는 칼라즈.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볼테르의 관용론은 프랑스 혁명에도 영향을 미쳤다./그림=위키피디아




1762년 10월 13일 밤, 프랑스 툴루즈시의 상인 장 칼라즈(Jean Calas·63세)의 집. 만찬의 흥이 비명과 함께 깨졌다. 장남 앙투안이 죽은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변호사 개업을 꿈꾸던 앙투안은 위그노(신교도)는 법관이 될 수 없다는 현실에 좌절했던 청년. 마침 도박 빚까지 짊어진 그는 스스로 생을 마쳤다. 주검으로 발견된 아들의 시신 앞에 오열하던 칼라즈 가족에겐 재앙이 닥쳤다. 군중의 광기 탓이다.

소식을 듣고 운집한 군중 가운데 누군가 ‘변호사 자격증을 얻으려 가톨릭으로 개종한 아들을 신교도 아버지가 죽였다’고 외쳤다. 사법당국은 증거가 없는데도 조사와 판결에서 군중 심리를 따랐다. 칼라즈는 거열형(車裂刑·수레바퀴에 몸을 묶어 돌리며 죽이는 형벌)을 받아 고통스럽게 죽었다. 재산은 몰수되고 가족들도 중죄인 취급을 받았다. 툴루즈 시민들은 판결에 환호했으나 철학자 볼테르는 의구심을 품었다.

종교적 광기에 의한 사법살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볼테르는 ‘관용론(1763)’을 썼다. 종교적 맹신과 편견으로 법의 이름 아래 죄 없는 노인이 처참하게 죽어간 현실을 고발한 ‘관용론’은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국왕 루이 15세의 각별한 관심 아래 국무회의가 주관한 항소심(1763)은 사건을 원점으로 돌렸다. 판사 80명이 동원된 최고재판소는 칼라스 가족의 무죄를 규명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줬다.



볼테르가 쓴 관용론의 핵심 구절. ‘네가 타인에게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너 역시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 낯설지 않다. 성서에도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장 12절)’는 구절이 나온다. 논어에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이면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관용(tolerance)이라는 단어는 14세기에야 사전에 등장하지만 동서고금을 떠나 오래전부터 보편적 가치로 여겨온 셈이다.

네덜란드계 미국 작가이며 역사가·기자인 헨드리크 빌렘 반 룬(1882~1944)은 ‘무지와 편견의 세계사’에서 “시대정신이 관용 쪽에 있으면 진보했고 반대의 경우 학살과 전쟁이 뒤따랐다”고 설파했다. 칼라즈 사건과 ‘관용론’은 인류 역사에 큰 흔적을 새겼다. 프랑스 종교 분쟁에 종지부를 찍고 대혁명을 앞당겼다. 칼라즈 사건 258주년이라는 시차를 넘어 우리를 돌아본다. 한국 사회에 관용이 있는가. 집단지성과 법관들은 믿을 만 할까. 소통과 타협도, 성찰과 관용도 찾기 어렵다. 우리는 어디로 갈까.
/권홍우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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