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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이번엔 받을줄"…'한국인 노벨상' 매번 희망고문으로 끝나는 이유

CA, 화학상 현택환 교수 예상했지만

논문 등 정량평가 위주 발표 한계

수상자 누적 적중률 15%대 그쳐

"노벨상, 첫 발견·원천 논문이 관건

연구현장 자율성·국제협력 강화를





올해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장)가 노벨 화학상 후보로 꼽힌다는 보도가 많이 나왔으나 지난 7일 뚜껑을 열어보니 성사되지 못했다. 그동안 일본에서 24명이 노벨 과학상(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을 받고 중국(1명)도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의 빈손 행진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일본은 오래전부터 기초과학에 투자하고 노벨 과학상을 수여하는 스웨덴과 과학기술 협력을 해왔다고 해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 중 인도(2명)·대만(2명)·파키스탄(1명)이 수상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현 교수를 노벨상 후보로 발표한 곳은 글로벌 정보분석 서비스 기업인 클래리베이트애널리틱스(CA). 이곳은 지난달 23일 올해 노벨 과학상과 경제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2020년 피인용 우수 연구자’로 6개국 24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곧바로 언론이 대서특필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기초과학연구원(IBS)도 소속 단장이 후보로 거론되자 관련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 교수뿐 아니라 CA가 후보로 꼽은 과학자는 단 한 명도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앞서 CA는 2014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룡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를, 2017년에는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를 각각 노벨상 후보군으로 꼽았지만 역시 맞히지 못했다. 2018년에는 로드니 루오프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도 후보군에 올렸지만 마찬가지였다.

톰슨로이터그룹의 ‘지적재산 및 과학 분야 사업부’가 독립해 만든 CA는 2002년부터 매년 노벨 과학상과 경제학상까지 4개 분야에서 후보군을 발표하는데 정량평가 위주라 적중률이 높지 않다. CA가 노벨상 후보를 발표한 뒤 실제 그해 수상자가 나온 경우는 없고 이후 시간이 흘러 수상한 사례가 15%대에 그친다. 해마다 4개 분야에서 10여명의 공동 수상자가 나오는데 CA는 올해까지 총 360명의 후보자를 발표해 누적 기준으로 57명을 맞혔다고 주장한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일부에서 ‘노벨상 족집게’라고도 하는데 논문 인용이 많은 최우수 연구자를 해마다 20명 안팎 망라해놓고 나중에 받는 것을 계산하면 좀 어폐가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국제 연구그룹에서는 CA의 노벨상 후보 발표가 자사 홍보 목적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CA는 산하 ISI의 분석 솔루션인 ‘웹오브사이언스’의 문헌과 인용자료를 분석해 2,000회 이상 인용(0.01%)된 논문을 쓴 과학자 중 후보를 선정한다. CA는 논문 인용 외 해당 분야에서의 연구 공헌도와 영향력까지 따진다고 하지만 뚜렷한 한계가 있다. ISI의 데이비드 펜들버리는 “2,000회 이상 인용된 논문은 1970년 이후 색인 등록된 5,000만여건 중 약 5,700건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성민 한국연구재단 연구원은 “노벨상은 논문 인용이 많은 것뿐 아니라 국제 연구 네트워크와 인지도, 연구 주제의 독창성, 연구 성과의 기술·사회적 파급력 등 다양한 요인들을 따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재단도 지난해 처음으로 논문 인용 등 정량평가를 통해 17명의 국내 과학자를 노벨상 후보군으로 꼽았다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과학자 줄 세우기’라는 비판을 받은 뒤 명단을 내지 않고 있다. 당시 국감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장 출신의 김성태 전 의원은 “일본의 경우 무명의 실험자가 몇십 년 동안 연구한 결과가 노벨상에 근접했다”며 “명망가 위주로 하게 되면 열심히 하는 연구자들을 낙담에 빠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노정혜 연구재단 이사장은 “단순한 정량적인 데이터라 구태여 계속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화답했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화학상을 보면 오래전에 C형간염 바이러스, 블랙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발견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며 “노벨상은 과학원리를 처음 발견한 연구자에게 상을 줘 우리나라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오기까지 다소 ‘축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명희 국민의힘 의원은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내년에 27조원을 돌파할 예정이고 기초연구 예산도 매년 증가해 2조원을 넘었다”며 “노벨상 수상을 위해 국제 연구협력 네트워크의 다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과의 국제 공동연구가 지난해 8건에 불과했고 최근 10년간 현지 대사관에 과학기술 담당관을 파견한 사례도 없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조남준 교수는 “노벨상은 원천 논문을 써야 해 젊은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과 문화가 중요하다”며 “연구 현장에서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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