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거꾸로’.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쓴 책 제목도 ‘거꾸로 읽는 세계사’다. 이 단어에는 기존 체제를 뒤엎고 주류세력을 교체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역발상을 중시하자는 메시지도 있다. 반면 거꾸로에는 역주행이라는 네거티브의 의미도 있다. 최악의 역주행은 ‘청개구리’ 태도다.
현 정권의 3년6개월 국정운영에서 드러난 거꾸로 행태는 과연 어느 쪽일까. 대통령 취임사를 펼쳐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고 다짐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반대 세력들을 ‘적폐’로 몰아붙였을 뿐 아니라 야당 출신 인사들을 요직에 기용한 적이 없다. 대신 ‘캠코더(대선 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를 강행했다. 게다가 검찰·대법원·헌법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 등에서도 코드 인사를 밀어붙여 권력분립을 무력화했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를 외쳤다. 하지만 조국-윤미향-추미애 등으로 이어진 특혜 논란은 정의와 상식을 흔들었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약속했지만 지난 6월 청년체감실업률은 역대 최고치인 26.8%까지 치솟았다. 취임사 중 약속이 이뤄진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밖에 없다는 비아냥도 있다. 그럼에도 여권 지지율 추락과 대통령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의 집권 4년차 지지율은 과거 대통령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리얼미터가 이달 12~14일 유권자 1,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45.4%였다.
지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장 거꾸로 가는 정권인데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는다. 첫째, 국정농단 사태로 추락했던 보수 야당이 대체재 기능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상대평가다. 여권이 실망스럽더라도 야권이 희망의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하면 레임덕은 오지 않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정치의 생명인 정체성부터 애매한데다 대중적 지지율도 바닥이어서 야권의 기둥이 될 수 없다. 국민이 기대고 싶은 ‘언덕’ 역할을 할 수 있는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가 부상하지 않는 것도 구조적 한계다. 김 비대위원장은 냉소적인 말투로 ‘대선주자가 안 보인다’면서 야권 주자들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둘째, 여권이 수사·사법기관을 장악해 정권 비리 수사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리 문제는 정권의 도덕성을 절대평가하는 핵심 기준이다. 김영삼·김대중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권은 4년차쯤 권력 비리 게이트 뇌관이 터지면서 크게 흔들렸다. 현 정부는 친정권 검사들을 ‘사냥개’처럼 만들고 권력 비리 수사를 맡았던 검사들을 좌천시키는 인사 등을 통해 검찰을 무력화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에 매달리는 것도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는 라임·옵티머스 펀드 의혹 수사가 과연 정관계 연루 의혹 등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셋째, 과도한 포퓰리즘 정책이 일부 유권자들을 마취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유권자에게 ‘현금 복지’ 선물을 안겨줄 경우 정권에 대한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하는 판단 능력을 마비시킬 수 있다. 현 정부는 재난지원금과 아동돌봄쿠폰 등을 활용해 전방위로 현금을 살포하면서 국민에게 구애하고 있다. 다수 유권자는 ‘돈 따로, 표 따로’라고 말하지만 일부 유권자들이 ‘돈의 맛’의 위력을 실토하는 경우도 있다. 전체 국민 가운데 5~10%의 표심이라도 움직인다면 선거 판세는 거꾸로 뒤집힌다. ‘유권자는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정당을 선호한다’는 정치경제학자 앤서니 다운스의 이론을 잘 아는 현 정권은 나랏빚을 동원하면서까지 선심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영원한 권력은 없다. 정상에 오른 권력은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많은 국민을 영원히 마취시키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산길 ‘어느 시점’에 갑자기 무릎 힘이 쭉 빠진다. 그 시점을 당기고 ‘거꾸로 국정’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국민의 몫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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