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시대 배경이 흥미로웠고, 세 친구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배우들의 케미도 좋았죠. 개봉날이 기다려져요.”
이솜에게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자부심 그 자체다. 90년대 시대적 배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점과 출연 배우들의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빨리 관객들에게 영화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성장과 우정, 연대를 유쾌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8년 차지만 회사의 말단 직원인 세 친구 자영, 유나, 보람은 대리로 승진을 하기 위해 회사에서 마련한 토익반에 모인다. 하지만 자영이 폐수 무단방류 현장을 목격하고, 이들은 회사가 덮으려는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이솜이 연기한 정유나 캐릭터는 삼진전자의 마케팅부 소속 사원이다. 마케팅부의 숨은 아이디어 뱅크지만, 정작 하는 일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윗선에 빼앗기거나 회의 중인 부서원들에게 햄버거를 사다 나르는 보조 업무가 전부다.
15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솜은 “제 영화를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지만 관객들이 좋아하실 것 같다”며 영화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작품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연출을 맡은 이종필 감독과의 인연 때문이다. 영화 ‘푸른 소금’에 배우로 함께 출연한 바 있다.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제안하면서 유나라는 인물을 쓰실 때 저를 생각하고 쓰셨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도 더욱 긍정적으로 보게 됐죠. 90년대 배경이라는 게 흥미로웠고 세 친구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성씨, 혜수씨가 함께 한다고 해서 마음이 설레었어요.”
유나로 분한 이솜은 “뭘 이렇게 열심히 해? 어차피 상고 출신이라고, 잔심부름만 하다가 사라지겠지”라며 말단 직원들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그는 유나 캐릭터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나갔다.
“유나 캐릭터를 연기할 때 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어요. 주변을 많이 챙기는 친구로 강한 척, 아는 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 인정욕을 넣었더니 유나가 친근해지고 사람다워지더라고요. 유나의 정서적인 면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영화에 많이 담기지는 않아서 아쉬웠어요.”
전작들에서 당당하고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던 이솜은 처음에 유나 역의 캐스팅 제안을 받고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캐릭터 제안을 받았을 때 고민을 했어요. 다른 결의 여성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또 연기를 하고 보니 제가 아니었으면 재미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대적인 느낌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게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유나처럼 할 말을 다 하는 돌직구 스타일은 아니라는 이솜. 유나와 실제 이솜과의 싱크로율을 묻자 “사실 저는 크게 유나와 닮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고 답했다.
“저는 유나만큼 아는 것도 없고, 아는 척도 못 해요. 그런데 주변에서는 그래도 할 말은 하는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생각보다 안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웃음) 대신 유나처럼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같이 나서줄 수 있죠. 반면에 말이 많지는 않아요. 강한 척하는 것도 저와는 좀 다른 모습인 것 같아요. 대신 유나처럼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힘들다고 하면 같이 나서줄 수 있죠. 반면에 말이 많지는 않아요. 강한 척하는 것도 저와는 좀 다른 모습인 것 같아요.”
유나의 내면만큼이나 외면적인 모습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모델 출신인 만큼 이솜은 화려한 외모와 패션 감각을 뽐내며 영화에 멋을 더했다. 실감나는 90년대를 그리기 위해 눈썹을 갈매기 모양으로 다듬었고, 당시 유행하는 블루블랙 헤어 컬러를 제시해 염색했다. 또 동묘시장에 직접 가 의상을 사모으며 스타일링을 하기도 했다.
“세 친구 중에서 90년대를 가장 잘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잡지나 영상,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죠. 외적으로 신경을 정말 많이 썼고 결과물이 너무 만족스러워요. 90년대 화장기법이 갈매기 눈썹이었는데, 실제로 눈썹을 뽑았고 눈썹뼈 부분은 살려서 윤곽을 돋보이게 했어요. 당시 블루블랙 헤어가 유행이었다고 들어서 꼭 하고 싶다고 했죠. 그런데 블루블랙은 물이 잘 빠져서 촬영하는 동안 서너 번 정도 물들였어요.”
유나의 외적인 면을 완성하는 데 엄마의 과거 모습도 참고했다. 영화 촬영 내내 이솜의 휴대전화 배경은 1995년 시절의 엄마 사진이었다.
“90년대 당시 엄마의 사진 앨범을 봤는데 정말 멋있더라고요. 멋쟁이셨어요. 가죽재킷이나 목폴라, 목걸이, 큰 액세서리들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저의 흐릿한 90년대 기억을 담으려고 했고, 유나의 모습에 엄마를 투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휴대폰에 엄마 사진을 담은 사실은 엄마는 몰라요. 제가 살가운 딸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말을 못했어요.”
90년대생 또래들이 모여 촬영한 만큼 영화는 유나, 자영(고아성), 보람(박혜수)의 케미가 돋보인다. 실제 친구 같은 호흡을 자랑한 이들은 촬영 당시 합숙을 하며 우정을 다졌다.
“또래 여배우들과는 처음이라, 정말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현장에서는 촬영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어요. 그래서 두 사람이 보고 싶기도 하고, 촬영이 어땠는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자연스레 방에 모여서 이야기하다가 잠들곤 했어요. 아성씨는 굉장히 사랑스러웠고, 혜수씨는 어른스럽고 든든했어요.”
이들은 한 작품에 출연하는 동료 배우로 만났지만, 촬영장을 넘어 실제로도 끈끈한 친분을 쌓게 됐다.
“셋 다 동갑 친구로 나오니까 실제로 친해지면 영화에서도 케미가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그게 저 혼자 생각만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두 사람 다 마음을 열어주고 편하게 대해주셔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두 친구가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저에게 최신 음악을 알려줬어요. 저는 옆에서 이모처럼 박수 치곤 했어요.(웃음). 촬영이 아니더라도 만나서 밥도 먹고, 영화도 같이 보러 가고 했어요.”
여성 연대를 강조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세 명의 여성 캐릭터가 영화를 이끌어 나간다. 여성 서사 영화가 많아지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흐름에 대해서는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 역시도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지금은 하고 있어서 흐름이 많이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더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저 또한 앞으로 그간 해보지 않은 캐릭터 위주로 하고 싶어요. 워낙에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유나와 정 반대의 성격의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안 해본 장르가 액션이기도 해도 액션도 하고 싶고, 가을이다 보니까 멜로도 하고 싶네요.”
인터뷰 내내 유나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 이솜. 현재의 이솜이 과거의 유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들어봤다. 또 유나는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유나는 정말 멋진 여성인 것 같아요. 지금 봐도 멋있는 여성 캐릭터라, 사실 너무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주고 싶어요. 지금처럼 나 자신을 사랑하면서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할 말을 멋지게 하는 여성으로 있어달라고 말이죠. (필모그래피 중) 유나는 유나대로 남을 것 같아요. 제가 해왔던 주체적 여성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강인한 여성으로 남을 것 같아요.”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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