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화로운 음악이 흐르던 마을. 어둠 속에서 잠들 준비를 하던 남편과 아버지, 형제들이 한밤중 담벼락 밑에 줄줄이 선다. 그리고 밤의 고요를 찢는 연쇄 총성. 여자와 아이들은 어디론가 끌려가 죽음의 공포와 함께 감금된다. 다시 남자아이들은 울부짖는 엄마 품에서 강제로 분리돼 살인 병기 학교로 보내지고, 여자들은 악마 같은 자들의 성 노예로 전락해 사고 팔린다. 열 살도 안 된 어린 여자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두려움과 폭력에 짓눌려 점점 무기력해져 가던 어느 날, TV를 통해 구조 요청을 보낼 수 있는 연락처를 기적처럼 얻게 되고, 생지옥에서 탈출한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여성들은 주저앉지 않고 총을 들고 일어선다. 끌려간 어린 아들을 되찾기 위해, 밤낮없이 겁탈당하는 모든 소녀를 위해, 그리고 평화롭던 고향을 되찾기 위해, 붉은 꽃무늬 스카프로 머리를 질끈 묶으며 매일 죽음을 각오한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포탄의 공포 속에서 노래한다. “함께라면 우린 두려움보다 강하다. 여성과 생명, 자유를 위해”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태양의 소녀들(감독 에바 허슨)’은 2014년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게 삶을 송두리째 짓밟혔던 야디지족 여성들의 무장 투쟁 실화를 전하는 작품이다. 실제 IS 피해 경험자인 인권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가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야디지족의 참상을 세상에 널리 알렸는데, 영화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을 살 떨리는 참상의 순간들을 재구성해 보여줌으로써 무심한 대중에게 관심을 촉구한다. 영화는 무라드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감처럼 “세상 모든 정부가 대량 학살 및 성폭력 범죄에 맞서 함께 싸우길 요구”한다.
관련기사
영화는 제71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영화제 당시 여성 영화인들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지지하기 위해 세상의 차별에 맞서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면서 또 다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전사 ‘바하르’ 역은 여성 차별에 항의하다가 모국에서 입국 금지 당한 이란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가 맡았다. ‘바하르’는 IS 치하에서 벗어난 후 ‘여자 손에 죽으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고 믿는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총구를 겨누는 인물이다. 종군기자 ‘마틸드’ 역은 제 68회 칸 여우주연상 수상자 엠마누엘 베르코가 맡아 열연했다. 러닝타임 111분. 15세 이상 관람가.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