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Intro
학습이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교육 격차 해소를 돕고, 지루한 과목을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게 하는 에듀테크 소셜벤처 ‘에누마’는 그 출발점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조직이다. 온라인 앱(응용 프로그램)을 활용한 ‘토도수학’은 미국과 중국, 한국 등 전세계에서 이용되고 있으며, 그 연간 사용자는 200만명에 달한다. 미국의 1,000여개가 넘는 초등학교에서 교재로 쓰이기도 한다. 에누마는 이처럼 어린이들이 스스로 답을 찾도록 유도하는 교육을 개발하는데, 이는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의 일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열두번째 인터뷰 주인공 정지연 매니저도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의 시간표대로 일할 수 있는 에누마를 통해 스스로 커리어의 답을 찾았다. 에누마코리아가 위치한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연님이 에누마코리아에서 맡고 계신 일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인사와 총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경영관리 업무라고 하면 회사의 살림을 꾸려나가는 지원부서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는 구성원들의 성장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전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평가와 보상에 특화된 인사 업무를 담당했었다면, 지금 일하고 있는 에누마코리아는 그에 비해 작은 규모의 소셜벤처이기 때문에 제가 해야할 업무들이 훨씬 넓게 펼쳐져 있어요. 그 모든 일들이 결국엔 사람에 대한 일이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의 역할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회사와 동료에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어 기뻐요.”
-이전 직장에서 지연님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이전 직장은 외국계 금융회사였는데 그 때는 정말로 일에 올인했던 것 같아요. 과로로 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며칠만에 상태가 위중해져 담당 의사가 저희 부모님께 ‘환자가 오늘을 넘기지 못할 수 있으니 준비 하셔야 겠다’는 말을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몇 개월만에 회복하고 다시 회사에 복귀할 수 있었는데요,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던 중에 대대적인 조직개편이 생겨서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또 다시 새벽까지 야근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던 중 함께 야근했던 친한 동료의 유산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제가 아팠던 것보다 더 충격적인 일이었어요. 저도 결혼을 한 상태였고 임신을 생각하고 있던 때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회사와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저의 직업관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죠. 내가 있어야 회사도 있는건데 너무 회사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이제는 일과 개인 생활 사이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런 지연님의 다짐이 잘 지켜지는 조직인가요?
“그럼요. 다시 일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기존에 일했던 전통적인 조직, 이를테면 대기업이나 외국계기업의 경우에는 풀타임 채용공고 외에는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러던 중 우연히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시간제와 재택근무 등 다양한 형태의 유연근무가 가능하다는 점이 현재 일을 선택한 가장 결정적 이유였죠. 면접을 준비하던 당시에,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며 대표님의 창업 배경에 대한 이야기에 정말 감동받기도 했고요. 에누마는 내 아이를 행복하게 잘 키우고 싶어서 만든 곳인만큼 구성원들이 일과 가정 중에 무언가를 선택하게 해서는 안 되고 둘 다 중요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하셨거든요. 실제로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워킹맘과 워킹대디 뿐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이 유연근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아마도 다른 곳이었다면 개인사유라는 단어 뒤에 숨겨야 했을 여러 상황들이 솔직하게 공유되고 서로 눈치보지 않거든요. 회사에서는 자유롭지만 책임감 있게 일하는 방식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있어요. 구성원 상호간의 신뢰가 두터운 조직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만큼, 저 역시 자연스럽게 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연님 가정의 변화도 궁금해요. 아이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은 처음일텐데 잘 적응했나요?
“다시 일을 시작하려던 저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아무래도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또 다른 이유로 저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어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유연근무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도전할 수 있었죠. 감사하게도 아이를 소셜벤처 공동 직장어린이집인 ‘모두의 숲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게 되면서 균형을 더욱 잘 잡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아이도 엄마가 회사에 간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지 매일 아침 출근길에 별다른 투정없이 어린이집을 가겠다고 따라 나선답니다. 자기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일터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분들과의 관계와 진심어린 조언이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의 동기 분들은 물론, 회사가 위치한 소셜벤처 코워킹 스페이스인 ‘헤이그라운드’에는 일하는 엄마들의 점심 모임이 있거든요.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점심 모임을 갖지 못하지만, 이렇게 알게 된 분들과 아이 이야기는 물론 제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마음껏 나누고 공감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아요!”
-그럼 마지막으로 지연님이 주로 이야기하는 커리어와 성장에 대한 고민, 혹은 앞으로의 목표는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금은 에누마와 제 일이 정말 좋아서 다른 회사로 옮기거나 다른 일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이가 모두의 숲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은 더더욱이요.(하하) 아이는 해를 거듭하며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고 좋아하게 될 테니 저도 이 곳에서 착실히 성장하며 제 역할을 늘려가야겠죠. 에누마는 더 많은 수익과 성장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미션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나가는 조직이고, 그게 제게는 정말 멋지게 보여요. 순간 순간 정말 이 회사 다니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첫 월급날에는 직원들이 일하는 것에 어떻게 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비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사서 사무실을 꾸미기도 했어요. 정말 기꺼이 하게 되더라고요. 에누마의 미션을 지키고 달성하는 과정에 함께 하며 저 역시 제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Outro
지연님은 다시 일을 시작하며, 아이가 아닌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기뻤다고 한다. 그렇기에 어떤 작은 것이라도 배우려는 마음으로, 어느 누구에게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은 마음으로 일에 임하고 있다고. 지연님 안의 건강한 에너지를 이끌어 낸 에누마의 미래와 또 지연님의 커리어가 앞으로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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