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감사원이 공개한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 결과에서 특히 눈길을 끈 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경제성 평가와 무관하게 원전 가동을 즉시 중단한 경위와 과정이다.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월성 1호기 즉시 중단을 지시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의지가 직간접적으로 강한 영향을 끼쳤다. 이후 한국수력원자력의 잘못된 경제성 판단, 산업부 직원들의 관련 자료 삭제 등이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감사원이 이날 공개한 월성 1호기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의 A 과장은 지난 2018년 4월2일 청와대의 한 행정관으로부터 “청와대 B 보좌관이 월성 1호기를 방문하고 돌아와 ‘외벽에 철근이 노출됐다’고 청와대 내부 보고망에 게시하자 문 대통령이 월성 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B 보좌관에게 물었다”는 내용을 들었다.
이에 백 전 장관은 “한수원 이사회의 조기폐쇄 결정과 함께 즉시 가동 중단하는 것으로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백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A 과장은 곧바로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즉각 가동 중단하는 쪽으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또 A 과장이 한수원 관계자를 불러 이 같은 내용을 전하자 한수원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영구 정지 운영변경 허가 시까지 가동하는 시나리오를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A 과장은 “즉시 가동 중단하는 방안으로 방침을 결정하고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월성 1호기 관련 추진 현황과 향후 계획을 대통령비서실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작성된 보고서를 문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전부 뜯어고쳤던 것이다. 이에 따라 2018년 3월까지만 해도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던 한수원은 이후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조치 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없게 됐다. 한수원은 같은 해 4월10일 체결한 B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용역 진행 과정에서 폐쇄 시기에 대한 다른 대안은 검토하지 않았고 정재훈 한수원 사장도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경제성 평가 때도 향후 4.4년간 원전 판매단가를 전년도(2017년) 판매단가(60원76전/kwh)에서 한수원 전망단가(55원08전/kwh)로 불합리하게 변경하면서 “판매단가 등 입력변수를 수정해야 한다”는 부사장의 주장은 묵살됐다.
사실상 청와대로부터 하향식으로 불합리하게 진행된 의사결정 과정은 감사원 감사 대응 때도 촌극을 연출했다. 산업부 C 국장은 국회의 요청으로 감사원 감사가 예고되자 지난해 11월 부하직원 D 과장에게 PC는 물론 휴대폰·e메일에 저장된 월성 1호기 관련 자료까지 모두 삭제하도록 지시했고 D 과장은 그해 12월 이를 이행했다. 디지털 포렌식까지 진행한 감사원은 444개 문서가 있음을 확인했으나 120개 문서는 결국 복구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그럼에도 감사 대상자들에 대한 직접 고발은 자제했다. 감사원은 백 전 장관의 행동을 국가공무원법 제56조를 위반한 비위 행위로 보고 엄중한 인사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그가 이미 퇴직한 후라 산업부에 인사자료를 통보하는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산업부 장관에게는 정 사장에게 “엄중하게 주의를 주라”고 요구했고 산업부 C 국장과 D 과장에 대해서는 징계를 요청했다. 문책 대상자들과 관련한 자료는 수사기관에도 보내기로 했다. 조기폐쇄를 의결한 한수원 이사들에 대해서는 본인이나 제3자가 이익을 취득하지 않았고 한수원에 재산상 손해를 가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배임 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한편 감사원은 이번 감사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당위성을 가리는 게 아니었다며 정치적 해석과 거리를 뒀다. 보고서 이름은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이지만 그 타당성 자체는 판단 영역의 밖에 둔 것이다. 감사원은 “감사원의 직무감찰규칙은 정부의 정책 결정, 정책 목적의 당부 등은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규정한다”며 “이번 감사는 경제성 분야 위주로 이뤄졌으므로 감사 결과를 월성 1호기 즉시 가동 중단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종합적 판단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