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주행을 하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지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는데 급가속을 하는 자동차가 있다면 어떨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한 달에 한 번,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그런 우려와 공포를 알고도 차를 살 사람이 있을까. 자동차 값의 절반을 깎아준다고 해도 구매할 사람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다. 내 가족을 태운 차가 고속도로 한가운데 갑자기 멈춰 서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이다.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모빌리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스마트폰이 고장 나면 잠시 불편할 뿐이지만 자동차가 고장 나면 생명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에 있어 ‘신뢰성(reliability)’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성이란 어떤 제품이 일정 기간 고장 없이 정해진 수준 이상의 품질과 성능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율주행차 등 미래 모빌리티 시대의 본격화를 앞두고 ‘신뢰성’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알아서 목적지로 이동해주는 자율주행차가 가져올 편리함은 상상 이상이지만 각종 센서 등 전장 부품 오류로 사고가 빈번하다면 찾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문학적 의미에서 ‘신뢰(trust)’의 어원은 독일어인 ‘편안함(trost)’에서 유래했다. 마치 내 집에 있는 것처럼 어떤 걱정도 없이 마음 편하고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차, 자율주행차 기술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업체인 일본의 도요타는 지난 1937년 설립 이후 ‘품질의 도요타’를 줄곧 경영방침으로 삼았다. 1957년 미국 시장에 처음 수출된 시험 차량이 로스앤젤레스(LA)의 부촌인 베벌리힐스 언덕에서 멈춰 망신을 당했지만 이를 교훈 삼아 품질과 신뢰성 확보에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았다. 도요타는 결국 반세기가 지난 2007년 미국의 자존심인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다.
도요타가 2009년 창사 후 최악의 위기를 맞은 것이나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품질과 신뢰성에 있다. 이익 극대화를 위해 원가 절감에 집중하다 불량 부품으로 대규모 리콜 사태에 직면했지만 사장 직속 품질특별위원회를 도입해 고객 신뢰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오는 2030년 ‘미래차 경쟁력 1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핵심기술 개발만큼 개발한 기술과 부품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도 노력을 쏟아야 한다. 중국 춘추시대 사상가 공자는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했다.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품질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과거든 현재든 혹은 미래든 자동차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신뢰성에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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