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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다 잃었니? 이제 할일을 하자





우리는 살고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살아남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꽃들, 가축들, 우리의 부모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생존하는 동안 육신의 여러 부분들이 우리에게서 벗어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는 것이다. 훗날 우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추억들을 잃고도 살아남는다. 그러고서도 우리는 <산다>라고 말한다. (장 그르니에, ‘어느 개의 죽음’, 1997년 민음사 펴냄)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반려견 타이오가 죽은 후 마음속에 들끓는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집안에서 내게 아무 조건 없이 달려들던 작은 온기가 사라진 후, 인간과 세계에 대해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과 관점이 있다고 믿었던 이 철학자는 무너졌다. 이 모든 것이 오직 자신에게서만 ‘이름’으로 불리던 ‘어느 개의 죽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삶과 죽음에 대해 자신은 그 어떤 것도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예단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끊임없이 이 개에 대해 생각하고 쓰게 했다. 개가 떠나고 텅 빈 집에 홀로 남아, 그는 삶과 상실에 대하여 계속 쓴다.

‘이런데도 계속할 수 있을까? 정말 계속 살 수 있을까?’라고 묻던 어린 날들은 인생의 어느 시기에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는 그 어떤 소중한 것을 잃고도, 그토록 마음을 주고 아끼던 존재들과 이별하고도, 결국 나는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안다. 이 지독한 삶의 속성이 때론 너무도 쓸쓸하고 잔인하게 느껴지지만, 그렇기에 크나큰 상실을 겪은 뒤에도 우리는 마음을 추슬러야 하고 일상을 되돌려야만 한다. 삶의 가장 큰 부분이 뚝뚝 떨어져나간 이후에도 우리는 결국엔 살아가고 살아남는 법이니까. 최근 SNS에서는 육아전문가인 오은영 박사가 우는 아이들을 달랜 후 한 말이 화제가 되었다. “다 울었니? 이제 할일을 하자.” 어른인 내게는 이 말이 이렇게 들렸다. “다 잃었니? 이제 할일을 하자.”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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