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놓고 연이은 입장 변화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입장 번복이 하도 잦다 보니 그가 정책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다.
1주일 만에 그는 대규모 경기부양 촉구에서 협상 중단으로 그리고 다시 대규모 경기부양 요구로 오락가락하더니 이미 할당된 기금을 이용하는 소규모 부양책 쪽으로 재차 방향을 틀었다.
갈지자 행보로 미국인들이 짐 져야 할 결과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면 그저 우스꽝스러운 일로 치부할 수도 있을 터이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추측은 앞으로 3개월 동안 참담한 재정난에 처한 수백만가구와 수천개의 기업들 그리고 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을 위한 지원은 거의 또는 아예 없으리라는 것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미국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긴급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을 탓하기 쉽다. 사실 그는 지난 4년간 전문적 식견과 역량 대신 자신을 향한 충성심을 기준으로 노예처럼 부릴 수 있는 측근을 기용했고 정책에 관한 무지를 학습을 통해 덜어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최근 폴리티코에 게재된 기사는 트럼프 행정부를 이렇게 평가했다. ‘A급 팀은 바라지도 않는다. B급만 돼도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해도 공화당 상원의원 대다수가 반대하는 추가 경기부양안에 힘을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트럼프가 저지른 비리를 기꺼이 덮어준다. 또 대통령이 외국 독재자들에 호감을 갖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한 미국인을 돕기 위해 예산을 사용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공화당이 그어놓은 마지노선이다.
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엄습하기 전부터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가 사회기반시설에 수조달러를 지출하겠다고 약속했다가 공수표를 날린 사실을 기억하는가. 그의 사회기반시설 투자는 애초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지난해 민주당과 이에 대한 실질적인 합의를 이루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로 양당 합의는 결국 물 건너갔다.
미국인들이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의회의 경기부양안 논의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유 역시 매코널과 그의 일당 탓이다. 의회는 앞서 지난 3월에 승인한 포괄적 재난구조안의 효과가 확연히 떨어진 지난여름 추가 부양안에 합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상원의 공화당은 이에 완강히 반대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긴급 실직수당 연장안을 통과시키려면 “나부터 짓밟고 가야 할 것”이라며 결사반대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게다가 연방세 납부액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연방정부 지원을 받는 켄터키주 출신의 상원의원 매코널은 주 정부의 재정지원안을 “블루 스테이트 구제금융”이라고 빈정댔다.
만약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이 지난해 민주당과 사회기반시설 지출안에 합의하고 올여름 추가 경기부양법안에 합의했다면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고 매코널이 상원 의석을 지킬 가능성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민주당과 합의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공화당이 입으로는 무슨 말을 하건 사실 경비는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2조달러 규모의 감세를 밀어붙일 때도 그들은 예산적자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들은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출안을 막으려 할 때만 예산적자에 강경하게 대처한다.
이것이 현재 공화당의 금권정치 어젠다이다. 필자가 아는 한 매코널과 그를 따르는 공화당의 모든 멤버들은 부유층 세금 인하와 저소득층 및 중산층 지원 삭감에 몰두한다. 3월 공화당이 경기부양패키지법안(CARES Act)에 찬성한 이유는 주식시장 급락세에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었다. 공화당은 지난 20년 동안 서민들에게 유리한 소득재분배 법안을 승인하지 않았다.
아마도 독자들은 노후한 사회기반시설 개선과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인 경제 피해자 지원안 등 정부지출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공화당이 금권정치 어젠다를 잠시 미뤄둘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 프로그램의 성공이 추가 지원에 대한 일반의 의존과 기대를 키울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인다.
공화당이 오바마케어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바마케어가 무보험자 숫자를 줄이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인들은 추가적인 의료제도 개혁에 큰 기대와 관심을 갖게 됐다.
같은 맥락에서 공화당은 팬데믹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은 피해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지원에 반대한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경기부양 실패가 아니다. 그들은 경기부양책이 성공을 거둬 대규모 정부지출 프로그램이 좋은 것이라는 일반의 인식이 제고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사실 성공적인 경기부양 패키지는 민주당의 다른 지출법안들 그중에서도 특히 어린이 빈곤을 극적으로 감소시킬 프로그램의 앞길을 터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결국 수백만 미국인들이 직면한 참담한 경제난의 책임 중 상당 부분을 트럼프가 져야 하겠지만 매코널 역시 그와 비슷한 책임을 함께 짊어지게 될 것이다. 과연 그들이 정치적 대가를 치를까. 2주 후에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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