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종전의 무역갈등에서 인권 및 민주화, 영토, 그리고 일국양제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들로 확산돼 가치 대립이나 체제 대립으로까지 전개되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부상에 따른 세력전에 대한 논의가 제기된 지 이미 오래지만 이제는 단순히 논의가 아닌 실제 상황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대통령선거가 진행되는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우려 또는 미중 관계의 갈등적 미래가 보다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난 2017년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표회의에서 2020년까지 ‘소강사회’, 2050년까지 ‘사회주의 강국’ 실현이라는 ‘중국몽’을 제시한 시진핑의 연설 이후 중국이 공세적이고도 대립적인 ‘마각’을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7월22일을 기준으로 센카쿠열도의 접속수역에 진입한 중국 해경국의 선박들이 100일 연속 나타나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이후에도 ‘자국의 영토이기에 정당한 권리’라는 주장 속에서 이러한 행동은 지속됐다. 10월13일에는 센카쿠열도에 침입해 57시간을 머물러 종전의 최장기록을 경신했다. 10월23일 한국전쟁 참전기념식 연설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을 막기 위한 참전이었으며 승리했다고 주장해 대결적 자세를 숨기지 않았다. 국력 증진에 따라 타국에 대한 배려 없이 모든 것을 자국 이익의 관점에서만 보는 경향이 극심해진 것이다.
미중 갈등의 심화는 많은 국가에 미중 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아베 내각의 외교·안보 노선을 계승해 미국과의 연대 강화와 그 연장선상에서의 기존 국제질서 유지를 견고히 하겠다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첫 해외방문지로 정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법의 지배와 개방성에 역행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움직임을 비판했는데 이에 대해 양국은 반응을 각기 달리했다.
올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의장국인 베트남은 스가 총리가 언급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구상’에 대해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일본과 방위시설 및 방위기술 이전과 같은 안보 분야의 관계 강화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남중국해를 안전하고 안정된 수역으로 만들자는 데는 동의했지만 그 이상의 안보적 협력에는 나서지 않았다. 중국과 인접해 과거에도 전쟁을 치렀고 최근에는 남중국해 문제로 갈등을 빚는 베트남으로서는 일본의 이러한 접근을 환영한 반면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인도네시아는 최근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벌어지는 중국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에 대한 전통적인 경계심으로 경제적 협력을 합의하는 데 그쳤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미중 갈등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선택하기보다는 사안별로 혹은 상황별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는 ‘균형론’이 대응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거대한 시장과 공장으로서의 경제적 측면이나 북한에의 접근이라는 안보적인 측면에서 기회를 제공할 중국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이고,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줄타기’가 기대하는 성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다. 더 큰 문제는 종전의 우방국으로부터 신뢰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현재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만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정체성을 견고히 유지하면서 추구해야 중국과의 관계도 원만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그것이 대칭적이든 비대칭적이든 견고한 중심이 필요불가결한 이치와 같다. 탈냉전기를 맞이해 일본이 제시한 보통국가론은 전후 일본의 번영이 기존의 국제질서에 의한 것이기에 그런 국제질서가 유지·강화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도 더 이상 일국평화 이기주의에 안주하지 말고 국제적으로 적극 공헌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돼야 한다는 논지에 기초한다. 한국에서는 군사대국화라며 비판이 거세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제국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보통국가화의 근저에 기존 질서에 대한 존중과 그에 따른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냉전 종식 이후 추구해온 다양한 평화협력 노선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금을 가능하게 만든 질서 유지에 어떻게 협조하고 공헌할 것인지를 고려해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의 정서에 그러한 몰염치함이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중심이 바로 서야 변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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