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쿠바 아바나에 있는 미국 대사관 직원이 집 근처에서 이상한 소음을 들은 뒤 두통이 생겼다는 얘기를 동료에게 전했다. 알고 보니 대사관 직원과 가족 수십 명이 비슷한 증상을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 심한 경우 청력을 잃고 뇌가 손상돼 균형감각까지 상실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 소식은 ‘아바나 신드롬’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국무부는 자국 대사관 직원들이 피해를 입은 데 대한 보복으로 주미 쿠바대사관 직원 15명을 추방했다.
미국은 조사를 거쳐 쿠바가 극초단파(microwave)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극초단파는 전자레인지 등에 활용되는 짧은 파장의 전파로 이를 사람에게 쏘면 뇌를 손상할 수 있다. 미군은 이미 고통을 줄 정도의 큰소리를 극초단파로 쏘아 적을 무력화하는 무기를 개발 중이며 러시아·중국 등도 극초단파 무기를 만들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쿠바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 “과학이 아니라 과학소설”이라고 반박했다. 극초단파 공격은 가까운 거리에서 가능한데 범인을 목격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2019년 1월 영국과 미국의 합동 연구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아바나 신드롬을 일으켰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음파 공격의 증거로 확보된 녹음 파일을 분석한 결과 카리브해에서 흔한 ‘인도짧은꼬리귀뚜라미’의 울음소리와 흡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귀뚜라미 소리가 뇌 손상을 일으킨 사례는 없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8년 중국에서 근무한 미국 대사관 직원 등 최소 15명이 극초단파 공격으로 의심되는 괴질에 시달려 치료를 받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보인 증상은 아바나 대사관 직원들이 겪은 것과 유사했고, 한 외교관 가족이 직접 장비로 조사한 결과 거주지에서 극초단파가 검출됐다. 아바나 신드롬의 원인이 극초단파 공격으로 압축되고 있다. 가을밤 정취를 자아내는 귀뚜라미가 혐의를 벗은 것이야 다행이지만 극초단파가 범인이라면 이제 담을 제아무리 높게 쌓은들 막아내기 어렵게 됐다. 총칼도 불감당인데 보이지도 않는 음파 공격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다.
/한기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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