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서 눈 좀 붙여야 하는데 특별한 날인 만큼 잠이 안 오더라고요. 휴대폰으로 우승한 중계 영상 보면서 왔어요.”
지난 2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데뷔 첫 우승을 달성한 2년 차 이소미(21·사진)는 하루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 진짜로 내가 한 게 맞나 싶다”고 했다.
여기에는 숨 가빴던 일정의 영향도 조금은 있어 보였다. 25일 오후 전남 영암에서 우승한 이소미는 차로 1시간 거리인 완도로 이동했다. 이소미의 고향인 완도에선 아버지와 아버지 지인들이 축하 플래카드와 케이크까지 준비해 장한 ‘완도의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횟집에서 짧고 굵은 축하파티를 마친 이소미는 숙소에서 잠깐 쉬다 배를 타러 갔다. 29일부터 출전할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이 열리는 제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1시30분 배에 올라타 물살을 가르기를 약 3시간. “그 시간에 배가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승객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는 그는 우승 장면을 돌려보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 제주에 도착했다.
투어 중 휴식기에도 마치 전지훈련처럼 1주일에 한 번만 쉬고 연습해온 이소미는 “우승한 순간 이때까지 연습했던 일들과 도와주셨던 분들이 스쳐 지나가 좀 울먹였다”며 웃었다. 올 시즌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 네 차례나 들 만큼 꾸준하게 우승을 두드린 끝에 맛본 달콤한 결실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꿈을 키워온 이소미는 우승하면 하고 싶었던 게 뭐냐는 물음에 “우승상금을 전부 부모님께 드려야겠다는 것 말고는 딱히 없다”고 했다.
놓치면 연장으로 끌려가는 마지막 홀 1.5m 남짓 파 퍼트는 그만큼 중요한 퍼트인지 잘 몰랐단다. “캐디 오빠한테 ‘이거 놓쳐도 우승이죠?’라고 물었더니 우승 맞으니까 마무리 잘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대로 쳤죠. 근데 알고 보니 그거 못 넣었으면 큰일 날 뻔했더라고요.”
그동안 챔피언 조에서 다음 홀을 미리 걱정하느라 경기를 그르쳤다는 이소미는 “지금 이 홀, 이 순간만 보고 노력했더니 우승이 왔다”고 말했다. “2연승이 욕심나기는 하는데 붕 떠서 실수할까 걱정이에요. 첫 승에 다시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려고요.”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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