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작품이 끝나면 ‘시원섭섭하다’가 가장 알맞은 답 같은데 이번 드라마는 후회스러운 점이 굉장히 많아서 끝나고 많이 울었어요. 왠지 나 때문에 다른 사람도 손해 본 것 같고, 더 잘할 수 있었는데…제 역할에 더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아 좀 아쉽고 서운해요.”
배우 김희선은 28일 오전 진행된 화상 인터뷰에서 SBS ‘앨리스’ 종영 당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그리고 이후로도 한 시간은 운 것 같다”면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소감을 전했다. 금세 눈가가 촉촉해진 그는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선방해서 좋은 경험과 도전을 했다는 기분이 들었다”며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시청률이 다는 아니지만, 좀 아쉬운 건 사실이에요. 15%는 넘을 줄 알았거든요. 좋은 기사와 댓글, 시청률까지 잘 나오면 금상첨화잖아요. 그래도 저희가 미니시리즈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고 있어요. 또 다른 장르물에 도전할 수 있는 계기,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김희선 주연의 ‘앨리스’는 죽은 엄마를 닮은 여자와 감정을 잃어버린 남자의 마법 같은 시간 여행을 그린 휴먼 SF. 극 중 김희선은 괴짜 천재 물리학자 ‘윤태이(김희선 분)’와 미래에서 온 인물이자 박진겸(주원 분)의 엄마 ‘박선영(김희선 분)’을 동시에 연기했다.
윤태이와 박선영은 미모를 제외하고는 나이·스타일·느낌도 180도 다른 인물이었다. 김희선은 대사에 있는 부분을 디테일하게 살리는 등 두 사람 사이에 차이를 두려 노력했다. 물리학자 태이를 연기하기 위해선 물리학 용어들이 입에 배도록 연습을 기하며, 두 인물 연기에 집중했다.
“헤어스타일과 나이대가 다 다르지만 한 사람이 한 작품에서 두 역할을 하는 데 한계가 분명히 있죠. 태이를 연기하면서 선영이 보이면 안 되고, 선영을 연기하면서 태이가 보여선 안됐기에 특히 목소리 톤을 다르게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물리학 언어도 전문가처럼 해야 해서 유튜브도 많이 보면서 공부했는데도 너무 어렵더라고요.”
‘앨리스’에서 단연 화제는 1999년 화제작 ‘토마토’에서 김희선이 보여준 모습과 다름없는 방부제 미모였다. 김희선은 극 중 20대를 연기하면서 ‘곱창밴드’와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나왔고, 이는 백수찬 감독이 김희선의 옛 모습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그의 변함없는 미모를 두고 ‘타임머신을 탔다’는 평가도 쏟아져 나왔다.
“캠퍼스룩으로 5살 정도는 어려보이겠죠. CG나 헤어소품으로 ‘토마토’ 촬영 당시를 흉내 낼 순 있었는데 20대 때랑 목소리가 너무 많이 달랐어요. 20대 역할을 하면서 현재 제 상황을 인지하게 됐죠. 인터넷에선 ‘오버다’란 반응도 ‘그때랑 많이 안 변하셨네요’라는 댓글도 있었어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기분 좋았는데 그래도 다시는 시도 안 할래요(웃음).”
20년 이상의 연기경력을 지닌 배우 김희선에게도 1인 2역 캐릭터와 판타지 장르를 한 번에 소화해내기란 쉽지 않았다. 모든 게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쉬운 길 보다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앞으로도 그는 “기존과는 다른 역할과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25년 넘게 (배우로) 생활하면서 제게 맞는 옷을 그때그때 잘 입었던 것 같아요. 운 좋게 20년 넘도록 이 일을 한 것 같아, 모험도 도전도 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했던 역할들보다 ‘김희선이 이런 면이 있었네?’ 하는 역할이라 욕심도 났고, 다 성공할 순 없지만 쓴소리도 들어가면서 하는 게 나름 인생의 재미 아니겠어요?(웃음).”
김희선의 색다른 연기 도전은 함께 호흡을 맞춘 동료 배우 주원과 곽시양(유민혁 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희선은 “두 사람 모두 좋은 배우이며, 밤까지 새면서 칭찬할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극찬했다.
“주원 씨는 성실하고 착한 친구예요. 보통 군대를 다녀오면 상남자 냄새도 나고 남성미가 있는데 이 친구는 너무 사랑스럽고, 모든 말을 너무 예쁘게 해요. 제 작은 말 하나까지 흘려듣지 않고 새겨듣는, 사소한 것까지 챙겨줄 줄 아는 친구죠. 이 자리를 빌려 캐스팅 미정이었을 때, 먼저 나와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해줘서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시양 씨는 같이 있으면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려요. 잘 웃고, 말도 안 되는 제 농담에도 자지러지게 웃어주죠. ‘어떻게 하면 이 친구를 웃겨주지?’ 싶을 정도로 같이 있으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해져요. 시양 씨는 자기 촬영이 저녁에 있거나 촬영이 없는 날에도 낮에 시간이 있으면 꼭 나와서 같이 있었어요. 촬영하는 것도 보고 더 친해지려 노력했죠.”
김희선은 앞선 인터뷰에서 배우 곽시양이 자신을 ‘순간 몰입도가 대단한 배우’라 칭찬한 데 대해 쑥스러워했다. 이어 그는 “저는 장거리가 선수가 아닌 단거리 선수예요. 감정을 하루종일 갖고 있으면 지쳐요. 슛 들어가기 10초 전에 혼자 빠져들고, 몰입해서 한꺼번에 쏟아내는 스타일이에요. 그걸 시양 씨가 보고 이야기하신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20대부터 40대까지 폭넓은 나이대의 인물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자신의 진가를 입증한 김희선. 그는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얻었고, 배우로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 만족해 했다. 또한 지금 이뤄낸 것, 앞으로 이뤄갈 것들을 하나의 목표로 구분 짓기보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것에 감사해 했다.
“목표는 없어요. 그냥 지금처럼, 지금까지 해온 것만큼 살아가면 다행이죠. ‘안녕하세요, 밤새 안녕하셨어요’란 단어에 맞는 세상이 됐잖아요. 지금의 코로나 위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요. 여행도 가고 싶지만 올해 남은 두 달 가량은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하면서 보낼 생각입니다.(웃음)”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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