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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도굴' 이제훈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감독 꿈 꿔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보다 더 다양한 얼굴을 가진 배우가 있을까. 영화 ‘파수꾼’을 통해 위태로운 소년의 얼굴을 그리는가 하면, ‘건축학 개론’에서는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반듯하고 순수한 청년을 표현했다. ‘박열’에서는 거침없고 패기 넘치는 독립운동가 박열을 재연하며 출연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이제훈이다.

그런 그가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도굴’에서는 가볍고 촐랑거리는, 능구렁이 같은 천재 도굴꾼 강동구로 돌아왔다. 흙 맛만 보고도 유물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천부적 기질을 타고난 도굴꾼으로 고미술계 엘리트 큐레이터 윤실장(신혜선)의 제안으로 고분벽화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삽질의 달인 삽다리(임원희)를 섭외해 팀을 꾸리고, 마침내 조선왕조의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선릉을 무대로 간 큰 도굴 작전을 펼친다.

자신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제훈에게 있어 강동구 캐릭터는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었다. 그는 동구를 만난 이후 한층 활발한 성격으로 변했고, 너스레나 넉살이 늘었다고 했다.

30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도굴’ 시나리오를 읽고 강동구 캐릭터에 빠져서 촬영 기간 동안 푹 빠져 지냈다”고 회상했다.

“가족이나 지인, 친구들을 만났을 때 저도 모르게 실없는 소리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들 ‘왜 저러지?’ 하더라고요. 제가 말할 때 마다 희희낙락하니까 다들 의아하게 보는 부분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는 말이 없어 가만히 경청하는 타입인데, 요새는 들떠서 이야기를 먼저 하더라고요. 어렸을 때 친구들은 지금의 제 모습을 보고 진짜 어렸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더라고 했어요. ‘도굴’에서 강동구의 모습이 제가 개구쟁이였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죠.”

이제훈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강동구 캐릭터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따로 분석이나 연구할 필요도 없었다. 상황과 흐름에 맞게 강동구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영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전달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분위기를 밝고 리듬감 있게 이어지길 바랐어요. 강동구의 대사를 보면 굉장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많고 각각의 캐릭터를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 받는 부분이 많아요.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뒀으면 했죠. 가라앉지 않고 기분 좋게 분위기를 띄워갈 수 있기를 바랐어요. 강동구란 인물은 목적이 분명한 인물이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사기꾼의 기질을 드러내죠. 그게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한 없이 분위기 잡고, 묵묵하게 있는 것 보다 말 많고 떠들면서 사람을 확 사로잡는 매력으로 다가가기를 바랐어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지상과 지하를 아우르며 다채로운 유물이 등장한다. 황영사 금동불상부터 고구려 고분벽화, 선릉에 묻힌 조선의 보물 모두 도굴의 대상이 된다. 도굴 작업을 하기 위해 실제로 배우들은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흙탕물에 몸을 내던졌다. 이제훈은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유쾌하게 찍었다며 당시를 추억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도굴’에서 육체적으로 힘든 장면들이 많았어요. 땅굴을 파고 들어가고, 수중 액션 등이 나오죠. 그래도 힘든 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제 정신과 마음은 즐거웠어요. 오히려 저를 힘들게 한 건 ‘사냥의 시간’이었어요. ‘사냥의 시간’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 힘들어서 그로기 상태에 빠져든 것 같았거든요. 조금이라도 누가 건들면 녹다운 상태가 될 것 같은 기분이요. 그런데 ‘도굴’은 즐거움만 가져다 줘서 육체적으로 힘든 게 고통으로 다가오진 않았어요.”

유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작품인 만큼 이제훈은 영화 홍보를 위해 직접 KBS1 ‘진품명품’ 출연을 제안해, 전날 촬영을 마쳤다. 어렸을 때부터 즐겨봐 오던 프로그램이라며 촬영하고 난 후의 소감을 전했다.



“어렸을 때부터 일요일 오전마다 ‘진품명품’을 봤어요. 그걸 보고 나서 MBC로 채널을 돌려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는 게 초등학교 때부터 패턴이었어요.(웃음) 프로그램 포맷이 바뀌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더라고요. 이런 프로그램에 처음 자리하는 거지만, 더 빠져들어서 보게 됐어요. 패널이었지만 한편으론 시청자 입장에서 유물을 보는데 신기하고, 더 자세히 감정단 분들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제훈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로맨스물이 거의 없다. 2012년 ‘건축학개론’과 2017년 tvN ‘내일 그대와’ 이후론 전무후무하다. 30대의 로맨스를 그려보고 싶다는 그는 실제로도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사랑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 하진 못했어요. 이제 30대 배우로서 조금 있으면 앞자리에 4가 붙잖아요. 30대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기다리고, 열심히 찾고 있어요. 빨리 좋은 상대 배우와 로맨스, 멜로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네요. 저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좋은 배필을 만나길 희망해요.(웃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이제훈은 “평생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일에도 도전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하드컷’이라는 영화 제작사를 차리기도 했다. 영화 ‘원라인’의 양경모 감독, 김유경 프로듀서와 손을 잡은 것이다. 직접 연출을 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는 “아직은 아니”라고 답했다.

“아직 연출을 할 그릇이나 역량이 안돼요. 그래도 꿈은 꾸고 있어요. 나중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배우이자 감독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기 어린 이 시점에서 제가 무언가 선보여야 한다면 습작식의 단편영화를 찍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배우가 된 것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까 스크린에서 비춰지는 배우들이 저한테 친숙하고 내가 영화 안에 들어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좋을 것 같은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한편으로는 내가 만약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생각해보면 영화 말고는 관심이 가거나 하고 싶은 일이 없었어요. 배우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파트든 상관이 없어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까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가 생긴 거죠. 많이 부족하고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게 그냥 한 두 번 하다말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영화라는 분야의 일들을 평생하고 싶은 사람으로 회사를 꾸려 가고 있어요.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회의하고 작품 빚어 나가는 과정들이 행복한 것 같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계가 많이 위축한 시점에서 ‘도굴’을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이제훈은 당장 흥행에 욕심을 내기보다 앞으로 영화계가 모두 함께 상생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관객들이 극장에 오게 되는 발걸음이 무거워지셨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 시즌에 개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에요. 극장에 오셔서 지치고 힘든 마음들을 ‘도굴’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스트레스 날리시길 바라요.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재미는 단순하게 집에서 태블릿PC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어두운 공간에서 큰 스크린, 좋은 사운드로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값진 경험이자 힐링이 되는 순간이잖아요. 저희 영화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들이 지속적으로 선보이면 많은 관객들이 예전처럼 극장에 다시 찾아올 거예요. 예전에는 외화, 한국영화 틈바구니 속에서 선의의 경쟁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닌, ‘함께 싸워내서 이겨 내자’라는 모토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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