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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에세이] '펜트하우스'가 '브람스' 후속이라니…그저 참담하다





남산타워보다 더 높은 곳에서 서울을 비추던 카메라가 방향을 돌려 강남 빌딩 숲 사이에 우뚝 속은 주상복합 건물로 향한다. 롯데월드타워보다 더 높은 마천루가 번쩍이는 불꽃들 사이에서 황금빛 몸매를 자랑한다.

그보다 더 빛나는 몸매를 자랑하며 럭셔리한 드레스를 갈아입는 펜트하우스의 주인 심수련(이지아). 그녀의 발끝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맨땅에 선 사람들은 고개를 치켜 올리고 마치 그 불꽃이 자신들을 위한 것인 양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왕실의 암투를 다룬 뮤지컬에서나 볼법한 금색 가발과 귀족 차림새로 춤추는 헤라팰리스 사람들. ‘펜트하우스’는 출발부터 마치 영화 ‘설국열차’의 앞 칸 이야기만 하겠다는 듯 화려함과 그 뒤에 숨은 인간의 허영심과 욕망을 대놓고 나열했다.

시청자들이 ‘웃기는 짜장’이라고 생각할 그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심수련과 아파트 고층에서 추락하는 의문의 여학생 민설아(조수민)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이전엔 본 적 없을 만큼 ‘자.극.적’일거라고.

2회까지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JTBC ‘스카이 캐슬’, ‘부부의 세계’와 유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단번에 그 입을 꾹 다물게 만들었다. 약 세시간 방송에 등장한 소재만 살인, 왕따, 불륜, 갑질, 복수, 출생의 비밀, 학교폭력, 학대, 사기, 부동산 개발 폭리 등 이전 드라마에서 자극적이다 막장이다 평을 받은 대다수의 설정을 마구잡이로 구겨 넣었다.



설정부터 이렇게 자극적인데 헤라팰리스에 사는 이들이 정상일리 없다. 모두 천사의 가면 속에 악마의 맨 얼굴을 감추고 있다. 돈과 권력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또 그렇게 실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늘상 ‘가진게 많은 악역’들이 그랬듯 아주 지저분하고 꼴불견이다.

그렇다고 없는 자들이 착해빠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오윤희(유진)는 국회의원의 밀회 장면을 찍은 뒤 협박해 돈을 받아내고, 고작 중3밖에 되지 않은 민설아는 서류를 조작해 헤라팰리스 아이들의 과외선생이 된다. 결국 모두가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들이 누가 더 계획적인가, 누가 더 돈이 많은가, 누가 더 악랄한가 경쟁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간다. 막장 그 이상의 막장을 보여주겠다는 듯.



물론 어른들은 그럴 수 있다. 그런 드라마 많았으니까. ‘아내의 유혹’도 그랬고, ‘황후의 품격’도 그랬고. 그런데 이 작품은 아이들의 상태까지 정상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과외선생 민설아를 절도사건에 휘말리게 하고, 자신들과 동급생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집단폭행에 감금하고 이를 촬영하며 즐기기까지 한다.

21세기를 열었던 ‘나쁜 아이들’은 미워하는 상대를 괴롭히고 돈을 뿌리는 정도에 그친데 반해, 2020년 드라마 속 나쁜 아이들은 그냥 악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이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참담하다. 시청자들이 불쾌한 것을 넘어 버럭 화내며 욕하다 “폐지하라”고 하면서까지 보게 만드는 최신식 MSG다.



이와 같은 작품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후속작이라는건 충격이다. 스물아홉 청춘의 혼란과 사랑, 갈등을 풀어내는 잔잔한 멜로디의 여운을 안고 같은 시간 TV를 켰더니 웬걸 계속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았다. 살인사건에서 한번, 불륜에서 한번, 거짓 학폭에서 한번, 선생들 모습을 보며 한번, 또래 아이를 감금 폭행하는 것에 한번…. 나중에는 뒤통수가 지끈지끈하다가 어질어질 해졌다. ‘브람스’를 좋아했던 시청자들에게는 더욱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는 설정이었다.

최근 뮤지컬 ‘베르테르’를 보며 5년 만에 다시 엄기준의 표현력에,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망과 그로 인해 죽음을 선택한 남자의 절절한 감정에 다시 감탄했다. 그런 그가 비열하고 이중적인 불륜남으로 등장한 것을 보며 속이 쓰렸다. ‘이브의 모든것’ 이후 20년 만에 악역을 맡은 김소연의 눈빛을 보며 꼬꼬마시절 그를 보며 참 무서워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만큼 좋은 표현력을 지닌 연기자들이 몰래, 짜릿하게, 은밀하게 밀회를 나누는데 긴장되지 않았다.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했다.

‘펜트하우스’가 첫 방송에 앞서 알려진 대로 물질적 상위 계층의 허영과 욕망을 고발하려고 하는지,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를 고발하려는지, 뭘 고발은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동안 지상파 드라마의 낮은 시청률이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 주려는 거라면 이해한다. 주제의식 대신 시청률 좇는다면 그 의도와 성과에 박수쳐줄 수 있다.

작품 홈페이지에 게재된 기획의도를 빌어, ‘지금 이 순간에도 책임과 정의, 양심은 뒤로 한 채 상층만을 바라보며 위로 올라가고자 애쓰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해 생각한다.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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