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2일(현지시간)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바이든의 우승을 점치는 시각이 우세하긴 하지만, 3개 경합주(플로리다·애리조나·노스캐롤라이나)에서 트럼프와 바이든이 초 접전을 벌이고 있어서 결과를 속단할 순 없는 상황인데요. 트럼프가 우편투표를 믿을 수 없다며 대선에서 질 경우 불복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으름장까지 놓고 있어서 대선 이후의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에 올 영향이 달라지는 만큼 미 대선은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선거 제도가 우리나라와 너무 다르고 복잡해서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죠. 복잡한 미국의 선거제도, 확실하게 정리해드리겠습니다.
◇ 경선, 미국 대선의 시작
미국은 공화당과 민주당, 거대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소수 정당이나 무소속으로도 대통령 후보에 출마를 할 순 있지만, 결국 양 당 중 하나의 당에서 대통령이 나올 수밖에 없죠. 당의 공식 후보가 되려면 우선 ‘경선’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경선 자체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낯선 개념은 아닙니다. 지난 2017년,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기 위해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최성 네 후보로 경선을 치른 적이 있죠. 여기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문재인이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요. 그런데 미국의 경선은 좀 다릅니다. 선거인단이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 바로 투표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해 줄 ‘대의원(Delegate)’에 투표를 하는 간접선거거든요.
미국은 2월부터 6월까지, 대략 4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주별로 프라이머리나 코커스를 진행해 대의원을 뽑습니다. 주별로 세부 규정이 다르긴 하지만, 쉽게 말해 프라이머리는 투표 등록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투표에 참여해 대의원을 정하는 방식, 코커스는 당원들만 모여 투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대다수 주는 프라이머리를 택하고 있죠. 올해는 민주당에선 7개 주, 공화당에선 5개 주만 코커스 방식을 택했습니다.
예비선거 기간도 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코커스는 아이오와 주에서 가장 먼저 열리고, 프라이머리는 뉴햄프셔주에서 가장 먼저 열립니다. 여기서 나오는 첫 결과에 따라 언론의 관심이나 선거 자금 모금액이 달라지기 때문에 미 대선에서 이 두 행사는 상징성이 크죠.
그런데 더 중요한 날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슈퍼 화요일’이라 불리는 3월 첫째 화요일이죠. 이날은 여러 주의 프라이머리와 코커스가 몰려있는 날인데, 그만큼 정해지는 대의원의 수가 많다 보니 각 당의 대통령 후보 윤곽이 드러나게 됩니다. 실제로 올해는 초반 강세를 보이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이날 1위 자리를 내주면서 바이든이 승기를 잡았습니다.
프라이머리와 코커스를 통해 뽑힌 대의원들은 각 당의 전당 대회에 참석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합니다. 올해는 8월 1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조 바이든과 카멀라 해리스가, 8월 24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가 대통령·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됐죠. 민주당에선 코로나19에 대비해 철저히 원격 화상 방식으로 전당 대회를 치룬 반면, 공화당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나흘간의 전당 대회를 열었습니다. 원래는 전당대회의 마지막 날 후보 수락 연설 때 후보가 등장하는 게 관례지만, 트럼프는 후보 지명이 이뤄진 첫날 현장을 깜짝 방문해 역동성과 현장감을 내세우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 미국 대선의 핵심, 선거인단 제도
그럼 이제 각 당의 후보가 결정됐으니 11월 3일, 투표만 하면 끝일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이날 결과가 나오는 건 맞지만, 절차상으론 끝이 아니기 때문이죠. 11월 3일 대선은 대선 후보를 직접 뽑는 게 아니라 대통령을 뽑아줄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을 뽑는 선거입니다. 경선에서 대선 후보를 결정할 대의원을 뽑은 것처럼 말이죠. 선거인단의 투표 방식은 주마다 달라서 투표용지에 대통령 후보의 이름을 적어 내기도 하고, 이미 인쇄된 종이에 적힌 후보의 이름에 표기하기도 하고, 빈 종이에 대통령 후보의 이름을 적어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뽑힌 ‘선거인단’이 12월 14일 날 투표를 해야 비로소 모든 투표 절차가 끝나죠.
다음 주 화요일 뽑게 되는 선거인단은 총 538명. 일단 주마다 2명씩 100명을 배정하고, 인구 비례에 따라 435명을 나눠 배정합니다. 여기까지 하면 535명으로 미국 의회의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을 합친 것과 같은 숫자가 되죠. 여기에 수도인 워싱턴DC에 배정된 3명이 합쳐져 538명이란 최종 숫자가 나옵니다. 즉, 대통령에 당선되려면 선거인단의 과반인 270명에게 표를 얻어야 하죠.
선거인단은 각 당에서 당원, 지역 유명 인사, 일반 시민들을 섞어서 구성합니다. 다만, 자신의 당에서 낸 후보에게 표를 던질 충성도 높은 사람들을 선택하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모든 주가 ‘승자독식제’를 택하고 있다는 겁니다.
◇ 한 표만 더 얻어도 선거인단 ‘독식’…승자독식제
쉽게 말해 한 표라도 더 많이 가져간 쪽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한다는 건데요. 선거인단이 55명으로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대선 투표 결과 캘리포니아 주민의 51%가 트럼프를, 49%가 바이든을 선택했다고 가정했을 때 2% 포인트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트럼프를 뽑기로 한 선거인단 55명 전체가 선택됩니다. 문제는 주민 49%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그렇다 보니 2016년 대선 때는 미국 전체에서 300만 표를 더 많이 받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낙선하고, 선거인단을 좀 더 확보한 트럼프가 당선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유권자 투표에서 이겼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해 당선되지 못한 사례는 5차례나 있었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대통령 후보가 캘리포니아·뉴욕처럼 민주당이 강세이거나 텍사스·아이오와처럼 공화당이 강세인 주는 일찌감치 제쳐놓고,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정치적인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경합주만 신경 쓰는 일도 발생합니다. 더불어 알래스카, 델라웨어, 버몬트 등 선거인단의 수가 적은 주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주’로 분류되어 버리죠. 이들 주에선 자연스럽게 투표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논란 많은 선거인단 제도, 탄생 배경은
이렇게 복잡하고 문제도 많아 보이는 선거인단, 왜 안 없어질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선거인단 제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미국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만큼 손을 대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선거인단 제도는 애초에 왜 생긴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선 헌법이 생겨난 미국 건국 초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당시, 미국의 주는 13개였는데요. 이 주들의 관계는 한 나라 안의 여러 지역이라는 개념보단, 서로 독립된 개별적인 동네들에 가까웠습니다. 1787년, 더 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각자 주권을 가진 주들의 대표들, 즉 건국의 아버지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협상 과정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헌법을 만들었죠.
건국의 아버지들이 당시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의 핵심 중 하나는 지방분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의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의원 개개인이 자신의 동네에서 쌓아온 지혜를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 사실 정당의 탄생이었습니다. 정당제의 가장 큰 단점이 자신의 소신과 반대가 되더라도, 자신이 속한 당의 기조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니까요. 즉, 정당제가 개인주의와 지방분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 헌법 정신에 전면 위배된다고 본 겁니다.
이런 두려움은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도 똑같이 적용됐습니다. 워싱턴DC에서 다 같이 생활하는 의원들이 대통령을 뽑게 되면 자신의 개별 소신과 철학에 따라 투표하기보다는 친분이 있는 사람, 자신과 같은 무리에 있는 사람을 뽑을 거라는 우려였죠. 그래서 아예 중앙정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을 각 주에서 대통령 선거 때만 의원 수 그대로 워싱턴DC에 불러와 투표를 시키고, 다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선거인단의 탄생이었죠.
당시엔 통신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한계도 있었습니다. 교통체계가 미흡하다 보니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미국 전역에 투표용지를 배부하고 다시 거둬들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 후보가 선거 공약을 국민에게 전달할 통신 수단도 마땅치 않았죠. 따라서 국민들을 대선 후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채로 투표에 임하게 하는 것보다는, 1차로 자신의 동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을 고르게 하고, 그 사람을 워싱턴DC로 불러들여 대통령 후보들을 직접 만나게 한 후 누구를 뽑을지 판단하게 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논리였죠. 당시 선거인단은 자신이 뽑기로 선택한 후보를 무조건 뽑아야 하는 지금과 달리 판단의 권한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선거인단 제도는 초기부터 왜곡되기 시작했는데요. 조지 워싱턴이 은퇴한 후 2대 대통령 선거부터 바로 정당이 생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선거인단 제도는 원래 취지와 달리 점점 변화해 오늘날의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 우편투표는 왜 2020 미대선 최대 변수로 꼽히나
선거인단이 미국의 선거 제도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이라면, 이번 대선에서 새롭게 이슈로 떠오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우편투표 논란인데요. 미국 대선 투표 방식은 우편투표, 사전 현장투표, 당일 현장투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 투표 방식 중 우편투표에 갑자기 이목이 쏠린 건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하면서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우편투표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였습니다.
우편투표는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유권자에게 투표지를 우편으로 보내면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할 건지 결정해 표기하고 투표지를 선관위에 다시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주마다 정책이 달라서 모든 유권자에게 투표용지가 자동으로 발송되는 주들도 있고, 신청한 사람들한테만 발송해주는 주들도 있고, 피치 못할 사유가 있을 때만 우편투표를 허용하는 주들도 있는데요.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만큼 이번 대선에선 대다수 주가 우편투표를 확대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우편 투표를 믿을 수 없다”고 나섰습니다. 우편으로 투표지가 오가는 방식이 본인이 현장에 직접 와 투표하는 방식에 비해 부정 선거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논리였죠. 트럼프는 대선에서 질 경우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까지 내놓았습니다. 때마침 뉴욕시에서 이름이 잘못 적힌 투표용지 10만 장이 발송되고, 펜실베이니아에선 투표용지가 버려진 채 발견되면서 트럼프의 주장엔 힘이 실렸죠. 하지만 트럼프의 속내엔 우편투표를 하면 평소 투표를 잘 하지 않던 흑인과 히스패닉의 투표율이 올라갈 거고, 그렇게 되면 그들이 지지하는 바이든 후보가 표를 더 많이 받을 거라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실제로 사전투표의 열기는 엄청나게 뜨겁습니다. 선거를 5일 앞둔 시점에선 사전투표 참여자가 7,040만 명을 넘어섰죠. 이는 4년 전 대선의 총 투표자의 절반을 넘는 수치였습니다. 사전 현장투표의 경우엔 트럼프가 공격하는 우편투표의 위험을 피할 제3의 옵션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전역 곳곳에서 하 종일 줄을 서 표를 행사하는 진풍경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종 투표율 또한 1908년 이후 최고치인 65%로 전망되고 있죠.
그런데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사전투표를 마침에 따라 막상 선거일인 11월 3일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트럼프가 우편투표의 개표가 진행되기 전에 자신이 이겼다고 선언해버리고, 이후 우편투표 결과에 불복하며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겁니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손을 들어줘 선거 결과 보류 판정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해야 하는 2021년 1월까지 결판이 나지 않는 경우엔 법에 따라 대통령 선출이 의회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때, 주마다 행사할 수 있는 표가 하나여서 주별 인구수 비례에 상관없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가 하나라도 더 많다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트럼프가 당선됩니다. 우편 투표가 ‘막판 변수’로 떠오르는 이유죠.
두 후보의 정책 싸움 외에도 트럼프의 우편 투표 불복 시사, 뜨거운 사전투표 열기, 경합주 막판 뒤집기 등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이번 미국 대선. 11월 3일. 과연 어떤 결과가 펼쳐질까요?
/정민수기자·김혜경인턴기자 minsoo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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