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곳이 기억나지 않는다. 보통 연예인과 만나거나 인터뷰를 하면 특유의 강렬함 때문에 뚜렷한 이미지가 남는데 크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편안하고 안정적인 사람, 함께 차 마시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내게 박지선은 그런 따스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행사 시작 10여분 전 그가 무대에 오르면 속으로 안도하곤 했다. ‘오늘은 좀 괜찮겠구나’ 하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나운서는 형식에 얽매였고, 연예인은 자기도 튀려고 하거나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려 했다. 그러면 배우나 제작진이나 기자들이나 모두 조금씩 불편해진다. 그가 사회를 본 행사에서는 단언컨대 그런 경우가 단 한번도 없었다.
배려 덕분이었다. 인기와 지명도가 높은 개그맨이지만, 그는 행사에서 자신을 앞세우는 법이 없었다. 잘 설명하고, 잘 듣고, 잘 질문했다. 간혹 답변이 불명확한 경우 콕 짚어서 다시 물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콩고물까지 묻혀 전달했다. 덕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모두 빛났다.
누구나 그랬겠지만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믿겨지지 않았다. 소식을 전하면서도 오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차분하고 사려깊은 그에게 극단적 선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고인의 동료들이 SNS를 통해 짧고 절절한 메시지를 올린 것을 보고야 정말 실감이 났다.
어떤 동료는 기도를 하고, 어떤 동료는 편지를 썼다. 라디오를 진행하던 도중 눈물이 나와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기도 했고, 빈소가 마련되기 전 장례식장을 찾아 눈물 흘리기도 했다. 개그맨, 배우, 가수…. 그를 한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가슴이 쿵 내려앉고, 그의 동료들과 함께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2012년 KBS2 ‘개그콘서트’ 희극 여배우들 코너에서 박지선은 이런 개그를 했다. “대학시절 현빈을 닮은 선배를 짝사랑했는데 고백을 하자마자 자원입대를 했다. 아직도 가끔 전화가 올 때마다 설레지만 선배는 ‘개콘 표를 구할 수 없냐’고 한다.”
돌아보면 그의 개그는 남을 공격하거나 비하하는 법이 없었다. 콩트의 틀 안에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야 대중이 웃을지 잘 알고 있었다. 가장 많이 선택한 콘셉트는 자학이었으나 결코 자신을 낮추거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냥 진짜 웃겼다. “엄마가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면 남자친구 생긴다고 해서 갔는데 안 생겼다”거나 “이렇게 얼굴로 웃기는 일 할 줄 알았으면 그 좋은 학교에 갈 필요가 있었냐”는 등.
얼굴과 말로 웃겨야 하는 것은 직업일 뿐, 각종 인터뷰에서 그는 아주 당당하고 주관이 뚜렷했다.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 없다. 이렇게 생긴 얼굴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거나 “내 얼굴을 사랑해서 날 사랑해줄 수 있는 집단을 찾아갔다. 잇몸 교정도 안하고, 어떤 시술도 하지 않겠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길 원하는데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 줄까.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다”는 말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개그맨이지만 웃김 보다는 따스함으로 기억되던 독특한 사람을 억지로라도 보내줘야 한다. 너무 갑작스럽지만, 꺼져버린 그의 휴대전화가 말해주듯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카톡의 1이 없어지지 않는다”며 “외롭게 쓸쓸히 떠나지 말고, 우리 모두의 사랑을 가슴 한가득 채워서 가길 바란다”는 김지민의 말이 모두의 마음과 같으리라 믿는다.
고인은 지병으로 인해 평소 화장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 사실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개그 요소로 활용하며 “분장으로 더 웃겨드리지 못하는게 아쉽다”고 했다. 마지막 길에는 더 웃기지 않아도 되니 곱게 화장하고 짐은 다 내려둔 채 편안하게 떠나시라. 그래야 내 마음도 조금은 편할 것 같다.
오랫동안 웃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녕.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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