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에서 코미디언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올해 방송가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급변하는 방송환경, 예능 트렌드,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멸 등으로 개그 무대가 사라지면서 코미디언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 일부 코미디언들은 숏폼 콘텐츠를 기획해 유튜브 등으로 활로를 개척하고 있으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무명 개그맨들에겐 이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과거에는 공채 출신 코미디언들을 위한 개그 무대가 어느 정도 보장됐다면, 이제는 자신만의 매력과 새로운 개그 코드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실제 KBS2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출신 코미디언들은 타 예능프로그램인 SBS ‘미운 오리 새끼’와 JTBC ‘뭉쳐야 찬다’에 출연해 이같이 힘든 현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달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선 방송인 김준호가 후배 코미디언들과 함께 사업 아이템 구상에 나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는 “‘개그콘서트’가 없어지고, 코미디언들의 아이디어를 쓸 곳이 없다. 이를 모아 사업으로 쓰려고 한다”는 계획을 밝히며, 명품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이하 콜라보)를 위해 즉석에서 전화 연결을 시도했다.
무모한 듯 보이는 그의 시도는 웃음을 안겼으나 마냥 웃으면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콜라보를 향한 김준호의 남다른 추진력은 최근 ‘개그콘서트’ 폐지로 실직 상태에 처한 후배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김준호의 집을 방문한 후배 코미디언 홍인규와 권재권, 조윤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됐다”며 하나 둘 고충을 털어놓았다. 권재관은 “올해 들어 행사한 적이 한번 도 없다”고 토로했고, 홍인규는 “예전에는 결혼식이나 돌잔치 사회를 봐서 애들 학원도 보내고 그랬는데 요즘 그런 게 없으니까…”라며 이에 공감했다.
또 다른 개그콘서트 출신 코미디언들은 구직을 위한 절실한 각오로 JTBC ‘뭉쳐야 찬다’를 찾기도 했다. 개콘FC로 팀을 이룬 이들은 ‘어쩌다FC를 꺾고 제2의 어쩌다FC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드러내며, 어쩌다FC와 축구 대결을 벌였다. 경기 결과, 아쉽게도 패배했으나 오랜만에 방송으로 만난 이들의 활약은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반면 명맥을 유지하는 일부 개그 프로그램 덕에 무대에 설 수 있는 코미디언들도 있다. 유일한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인 tvN ‘코미디 빅리그’는 9년 째 방영 중이다. 올해 코로나19 사태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코미디언들로 객석을 채우거나 비대면 화상 채팅을 도입해 이를 영리하게 이겨냈다. 그러나 ‘코미디 빅리그’의 인기도 예전 같지는 않다.
이외에 숏폼드라마 코미디인 JTBC ‘장르만 코미디’에서도 유세윤, 안영미, 김준현, 정태호 등 익숙한 코미디언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코미디 부활을 위해 다시 뭉친 이들은 ‘장르만 코미디’에서 웹툰, 드라마, 예능, 음악 등 여러 장르와의 콜라보를 통해 코미디의 확장성을 추구하며 개그감을 발휘중이다.
그러나 야심찬 기획과 달리 시청률은 1%대에 머물고 있으며, 화제성은 저조한 편이다. 지난 달 이근 대위 논란으로 ‘장르만 연예인’ 코너가 통으로 편집되는 일이 발생했고, 코미디언들의 콘텐츠 퍼레이드가 펼쳐져 보는 재미를 높인 코너 ‘찰리의 콘텐츠 거래소’는 개편과 함께 사라졌다. 시청자 평도 극과 극인 상황이다.
여러 이유로 코미디언들을 개그 프로그램에서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 됐으나 유튜브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만들어 코미디언으로서의 업을 이어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4년 tvN ‘코미디빅리그’와 2015년 SBS 신입개그맨으로 데뷔한 개그맨 커플 손민수와 임라라는 유튜브 ‘엔조이커플’ 채널로 구독자 180만 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과 2014년 SBS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안진호와 최부기, 그리고 2012년 슈퍼모델 선발 대회로 데뷔한 정재형이 뭉친 유튜브 채널 ‘동네놈들’도 구독자 110만 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밖에 장다운·한으뜸의 ‘흔한남매’(207만명), 김승진·유룡·이재훈의 ‘배꼽빌라’(90만 7,000명),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68만 명), 김준호의 ‘얼간 김준호’(구독자 42만 명), 이국주(38만 9,000명), 이상훈의 ‘이상훈TV’(32만 8,000명), 안윤상의 ‘더빙신안윤상’(23만명), 안일권(16만 3,000명) 등 인기 코미디언과 신인 코미디언을 막론하고 유튜브에서 선전 중이다.
코미디언만을 위한 무대는 최소화됐을지라도 ‘미우새’와 ‘뭉찬’, ‘코미디 빅리그’와 ‘장르만 코미디’, 유튜브에서 이들이 보여준 입담과 화려한 개인기는 여전하다. 개그 프로그램이어야만 한다는 형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면, 매체가 다양해진 시대에 그들이 끼를 펼칠 수 있는 무대는 어디든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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