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나는 두 눈이 멀쩡한 친구들에게 무엇을 보았는지 묻곤 합니다. 최근에도 친한 친구 하나가 숲속으로 긴 산책을 갔다가 나를 찾아왔기에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어.” (…) 한 시간이나 숲속을 걷고서도 특별히 관심 가질 것을 찾지 못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 그러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적게 보는 듯합니다. (…) 만약 내가 대학의 학장이라면, ‘눈을 사용하는 방법’이라는 필수 과목을 개설하겠습니다. 선생은 학생들이 이전까지는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던 것들을 제대로 보고, 삶에 즐거움을 더하는 방법을 보여주고자 하겠지요. 학생들의 잠들어 있는 무딘 감각을 깨우고자 할 것입니다. (헬렌 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2018년 도서출판사우 펴냄)
어릴 적 위인전이 아니라 헬렌 켈러가 직접 쓴 자서전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깜짝 놀라게 된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를 겪은 그의 글엔 암흑세상의 고통과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불굴의 의지와 계몽이 있으리라 짐작하겠지만, 헬렌 켈러의 책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 경이로움의 축제와 같다. 날뛰는 망아지 발굽에서 땅의 진동을 느끼고, 파도의 신선한 냄새와 천지를 뒤덮은 눈냄새를 맡으며, 꽃나무들의 형태를 세밀화처럼 그려내는 그 생생한 문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이 책에서 결코 장애인을 계몽하려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계몽되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눈과 귀가 멀쩡한데도 제대로 안 쓰고 대충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은 별 볼 일 없다 믿는 사람, 남의 말에 귀 틀어막은 사람, 소통하기보다는 삐죽거리는 데 입술을 쓰는 사람들. 만약 헬렌 켈러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졌다면 이 별 볼 일 없는 하루 속에서도 온갖 반짝이는 ‘별일’들을 발견했을 텐데. 헬렌 켈러는 말한다. 시력 청력이 멀쩡한 것도 당신의 재능이라고. 그러니 부디 그 재능을 아끼지 말고 힘껏 살아달라고.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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