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20년 전으로 되돌린 2000년 11월7일(현지시간). 동부시간 오후8시께 미국 방송사들은 플로리다를 고어 우세주로 판단했다. 9시에는 민주당 텃밭인 뉴욕주 개표가 이뤄져 고어가 부시를 192대153으로 리드했고 직후 부시가 오하이오주에서 이긴 것으로 집계되면서 192대185가 됐다.
그런데 10시 각 방송사가 플로리다를 고어 우세에서 경합지로 번복하면서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날짜를 넘긴 8일 오전2시30분, 플로리다가 부시 우세로 집계되면서 방송사들은 부시 당선을 선언했다. 이에 고어도 부시에게 축하전화를 걸었다. 패자가 조기에 결과에 승복하는 미국 대선판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었다.
대혼란은 그때부터였다. 플로리다의 두 후보 득표 격차가 0.05% 이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플로리다 주법에 따르면 이 수준의 격차에서는 재검표를 해야 한다. 재검표 결과 플로리다 승자가 바뀌면 대선 승자가 바뀌는 상황. 고어는 오전4시 결과 승복을 철회했고 미국은 한 달 넘은 재검표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우선 플로리다주 법원 명령에 따라 수작업으로 재검표가 이뤄졌다. 선거 당일 득표 차는 1,784표였는데 일부 지역만 재검표를 했는데도 표 차이가 확 줄었다. 어쩌면 승자가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시 측에서 선거 관할권 관련 소송 등을 연방대법원에 제기해 문제를 연방 차원으로 끌고 갔고 결국 연방대법원은 그해 12월12일 수작업 재검표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부시가 승자가 됐다. 수작업 재검표 결과 두 후보의 격차는 고작 537표, 0.009%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결과 고어는 전체 득표수 5,100만표(48.4%)로 약 50만표(0.5%) 넘게 부시를 앞섰지만 정작 선거인단 숫자에서는 271대267로 밀려 대통령 당선에 실패했다.
이번 선거는 초박빙주가 여러 개인데다 우편투표 문제까지 있어 더 복잡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연방대법원에 가겠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이든 소송 등 법률 대응을 하겠다는 선언이다. 조 바이든 후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시나리오에 대비해 소송전을 준비하고 있어 대선 승자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존재한다.
소송전이 현실화하면 두 후보는 연방대법원의 결정을 우선 기다려야 한다. 만약 대법원 결정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가 확보한 선거인단이 269대269로 동수를 이룬다면 하원 투표까지 갈 수도 있다. 미 역사상 하원이 대통령을 선출한 경우는 1800년과 1824년 두 차례 있었다.
미 헌법은 대통령 후보 중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하원이 비밀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50개 주별로 1명의 하원의원이 대표 투표를 하게 된다. 주별로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면 공화당이 1표를, 민주당이 다수당이면 민주당이 1표를 행사한다. 이번 하원 선거에서 어떤 당이 더 많은 주에서 다수당이 됐는지가 대권 향배를 결정한다.
만약 하원에서도 양당의 표가 25대25로 동수로 나오면 어떤 당이든 과반인 26표가 나올 때까지 하원은 투표를 반복한다. 투표를 반복하다가 법정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20일을 넘기면 하원의장이 대통령직 대행을 맡게 된다.
/맹준호·박성규기자 nex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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