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는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을 상대로 보궐선거 비용 가운데 1억원을 국가에 배상할 것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바 있다. 당시 한나라당 소속 맹형규 서울 송파갑 지역구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의원직을 사퇴했는데, 다시 한나라당 후보로 보궐선거에 출마해 재당선되면서 8억원에 이르는 혈세가 낭비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한나라당이 맹 전 의원의 보궐선거 출마를 막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조정을 제안했다. 이에 공선협은 눈물을 머금고 소송을 취하했다.
선거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수백억 원의 세금은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지불하는 비용이다. 따라서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뜻을 받아들여 자신의 임기를 채울 때까지 국민을 대변할 도의적 책임이 있다. 국회의원이 도의적 책임을 저버릴 경우 해당 후보를 낸 정당이 그 무게를 감내해야 한다. 설령 법적인 책임에서 자유롭다 하더라도 말이다. 무공천이 남기는 생채기는 정당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내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 들어가는 비용은 총 838억원이다. 이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사퇴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서울시 직원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발생한 공백이다. 이 공백의 무게를 짊어져야 할 더불어민주당의 당헌 96조 2항은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3일 스스로 그 무게를 벗어던졌다. 일사천리로 당헌 개정을 의결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가장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약속했다. 도의적 책임을 던진 정당이 약속한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는 누가 됐든지 간에 국민이 치를 838억원만큼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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